비트겐슈타인 완전판
Ludwig Wittgenstein · 1889–1951 · 두 권의 책, 두 개의 철학

비트겐슈타인 완전판 해설서

Wittgenstein — his life, his two philosophies, and the LLM resemblance hypothesis

abc 명제 = 사실의 그림 · 2.1 7 침묵 TRACTATUS · 1921 — 논리적 형식 1929 겹치는 유사성의 그물 · §67 판석! 파리통 §309 INVESTIGATIONS · 1953 — 삶의 형식
생애 9절 · 『논고』 11절 전환기 5절 · 『탐구』 11절 LLM 유사성 가설 12절 인터랙티브 시뮬레이션 11종 그림 14점 용어집 · 연표 테마 3종 · 읽기 설정
이 해설서의 성격. 『논리철학논고』(1921 독어판 · 1922 오그던 영역)는 저작권 보호 기간이 끝나 원문을 그대로 인용할 수 있습니다. 반면 『철학적 탐구』(1953)를 비롯한 유고 편집본들은 여전히 저작권 보호를 받으므로, 이 문서는 절 번호(§)를 밝히고 논지를 우리말로 풀어 설명하는 방식을 취하며 짧은 핵심 문장만 출처와 함께 인용합니다. 원문 전체를 옮긴 번역이 아닙니다. 해설 · 도해 · 시뮬레이션은 모두 이 문서의 창작물입니다.
6부의 지위에 관하여. 비트겐슈타인은 1951년에 죽었고 LLM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6부의 「유사성 가설」은 역사적 인과가 아니라 구조적 유비에 관한 주장이며, 이 문서가 제시하는 하나의 해석입니다. 그래서 6부 끝에 반론(5.10)과 항목별 채점표(5.11)를 붙여, 유비가 어디서 성립하고 어디서 깨지는지를 따로 표시했습니다.

0이 해설서를 읽는 법 How to read this companion

Wittgenstein wrote two philosophies and disowned the first. This companion follows the whole arc — the life, the Tractatus proposition by proposition, the collapse of that system in the early 1930s, the Investigations section-block by section-block, the last writings — and then puts the resulting view of language next to a machine that was built, sixty years later, on almost exactly the principle he arrived at: that meaning is use. The final parts state that resemblance as a hypothesis, argue it, argue against it, and let you run it.

왜 한 사람에게 두 개의 철학이 있는가Two philosophies, one author

철학사에서 자기 대표작을 스스로 뒤엎은 사람은 드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을 했습니다. 1921년의 『논리철학논고』는 언어가 세계를 그리는 방식에는 하나의 정확한 논리적 형식이 있다고 주장했고, 그 형식을 벗어난 말은 전부 무의미(unsinnig)라고 선언했습니다. 이 책은 스스로를 사다리라 부르며 끝났습니다. 올라간 뒤에는 걷어차 버려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는 실제로 걷어찼습니다. 1929년에 철학으로 돌아온 뒤 20년 동안 쓴 것은 『논고』의 모든 핵심 전제 — 이름·대상·논리적 원자·단일한 언어 본질 — 에 대한 반박이었습니다. 1953년 사후에 나온 『철학적 탐구』의 언어관은 정반대입니다. 언어에는 본질이 없고, 오직 서로 겹치는 수많은 활동(언어게임)이 있으며, 낱말의 의미는 그 낱말이 쓰이는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이 문서의 한 문장 요약

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논리적 계산으로 보았고,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훈련된 실천으로 보았다. 인공지능의 역사는 정확히 같은 순서로 같은 두 길을 걸었다 — 먼저 기호 논리로, 그다음 통계적 사용으로. 이 해설서는 그 평행을 끝까지 밀어붙인 뒤, 그것이 어디서 깨지는지도 함께 보여 준다.

1부 생애 1889–1951 2부 『논고』 논리적 형식 · 1921 3부 전환기 1929–1936 4부 『탐구』 · 5부 유고 삶의 형식 · 1953–1969 기호주의 AI 논리 · 규칙 · 온톨로지 통계적 언어모형 분포 · 사용 · 학습 ← 구조적 유비 (역사적 인과 아님) → 6부 · LLM 유사성 가설 주장 · 반론 · 채점표 7부 · 시뮬레이션으로 직접 확인
그림 1 — 이 해설서의 지도. 위 줄은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궤적이고, 아래 줄은 그 궤적을 인공지능의 역사에 겹쳐 놓은 것입니다. 두 줄을 잇는 점선은 영향 관계가 아니라 구조의 닮음을 뜻합니다.

읽는 순서Reading paths

순서대로 읽는 것이 가장 좋지만, 목적에 따라 건너뛸 수 있습니다.

목적경로대략 소요
철학사적 인물로서의 비트겐슈타인1부 → 2부 → 4부 → 논지 지도길게
LLM과의 관계만0 → 3.2 · 3.3 · 3.6 · 3.7 요약 → 6부 → 7부중간
직접 만져 보면서 이해7부 먼저 → 되짚어 4부짧게
인용·용어 확인용어집 → 연표참조용

인용 약호Sigla

이 문서에서 인용 표시는 TLP 2.1, PI §43처럼 붙습니다. 『논고』는 명제 번호, 『탐구』 1부는 절(§) 번호, 2부는 PPF 번호(2009년 4판의 표기)입니다.

약호원제성립 / 출간번호 체계
TLP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 Logisch-Philosophische Abhandlung1918 완성 · 1921 독어 · 1922 영역소수점 명제 1–7
NBNotebooks 1914–19161914–16 · 1961 출간날짜
LEA Lecture on Ethics1929 강연 · 1965 출간
PRPhilosophical Remarks / Philosophische Bemerkungen1929–30 · 1964§
BBThe Blue and Brown Books1933–35 구술 · 1958
PGPhilosophical Grammar1932–34 · 1969§
PIPhilosophical Investigations / Philosophische Untersuchungen1936–49 · 1953§1–693
PPFPhilosophy of Psychology — A Fragment (구 『탐구』 2부)1946–49 · 1953PPF i–xiv, §1–372
RFMRemarks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1937–44 · 1956부·§
ZZettel1929–48 · 1967§
OCOn Certainty / Über Gewißheit1949–51 · 1969§1–676
ROCRemarks on Colour1950–51 · 1977부·§
CVCulture and Value / Vermischte Bemerkungen1914–51 · 1977연도
번역어에 관하여. 이 문서는 다음 번역어를 일관되게 씁니다 — Sachverhalt = 사태, Tatsache = 사실, Sinn = , Bedeutung = 의미(프레게 문맥에서는 지시체), Sprachspiel = 언어게임, Lebensform = 삶의 형식, Abrichtung = 훈련(동물 조련의 어감을 살림), Übersicht / übersichtliche Darstellung = 일목요연한 조망, unsinnig = 무의미, sinnlos = 뜻이 없음. 이 둘의 구별은 1.4에서 다룹니다. 전체 목록은 용어집에 있습니다.

이 문서가 하지 않는 것What this is not

세 가지를 미리 밝힙니다. 첫째, 이것은 번역이 아닙니다. 원전을 대체할 수 없고, 대체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둘째, 이것은 중립적 개관이 아닙니다. 특히 6부는 하나의 해석을 밀어붙이고, 그 해석이 어디서 틀리는지도 같이 적었습니다. 셋째, 비트겐슈타인 해석에는 서로 양립하지 않는 학파들이 있습니다. 갈리는 대목마다 「주요 논쟁」으로 넘겨 두었으니, 본문의 서술이 정설이 아니라 하나의 독법임을 표시한 지점을 눈여겨봐 주십시오.

1부

생애 — 기술자에서 철학자로

Life · Vienna 1889 — Cambridge 1951

항공공학도가 프로펠러의 수학을 파고들다 수학의 기초로, 다시 논리학으로 밀려 들어갑니다. 그 뒤 62년은 유럽에서 가장 부유한 집안의 아들이 재산을 전부 버리고, 두 번의 전쟁을 통과하고, 자기 대표작을 스스로 무너뜨리는 이야기입니다. 생애를 먼저 읽는 이유는 감상 때문이 아닙니다 — 『논고』의 문체도 『탐구』의 문체도, 그가 어떤 방식으로 살았는지를 모르면 왜 그렇게 쓰였는지 이해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L.1빈의 궁전 — 가문과 유년 The Palais Wittgenstein, 1889–1906

Wittgenstein was born into one of the richest and most musical households in the Habsburg empire, and into a family in which three of his four brothers killed themselves. Both facts matter for the philosophy: the money he would later give away, and the moral seriousness that never once reads as academic.

루트비히 요제프 요한 비트겐슈타인은 1889년 4월 26일 빈에서 태어났습니다. 8남매의 막내였습니다. 아버지 카를 비트겐슈타인(1847–1913)은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철강 산업을 사실상 지배한 실업가로, 당대 유럽에서 손꼽히는 부자였습니다. 알레가세의 저택(Palais Wittgenstein)에는 일곱 대의 그랜드 피아노가 있었고, 브람스가 드나들었으며, 말러와 브루노 발터가 연주했습니다. 어머니 레오폴디네(폴디) 칼무스는 뛰어난 피아니스트였습니다.

이 집안의 음악성은 장식이 아닙니다. 형 파울은 콘서트 피아니스트였고, 1차 대전에서 오른팔을 잃은 뒤에도 연주를 이어가 라벨의 「왼손을 위한 피아노 협주곡」(1930)을 비롯해 프로코피예프·리하르트 슈트라우스·브리튼의 작품을 위촉했습니다. 루트비히 자신은 악기를 거의 다루지 않았지만 휘파람으로 협주곡 전악장을 정확히 불 수 있었다고 전해지며, 후기 저작에서 음악적 이해는 「언어적 이해」의 핵심 모델로 반복해 등장합니다 (PI §527: 문장을 이해하는 것은 흔히 생각하는 것보다 음악의 주제를 이해하는 것에 훨씬 가깝다는 취지의 언급).

세 형의 죽음. 한스(1902, 미국에서 실종·자살 추정), 루돌프(1904, 베를린에서 음독), 쿠르트(1918, 전선 붕괴 때 권총 자살). 남은 형제는 파울과 루트비히, 그리고 세 자매(헤르미네·헬레네·마르가레테)였습니다. 루트비히 자신도 청년기 내내 자살을 생각했다고 여러 곳에 적었고, 1912년 러셀에게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이 사실을 들추는 이유는 심리 분석을 하려는 게 아니라, 그의 글에서 철학이 왜 한 번도 직업처럼 읽히지 않는가를 설명해 주기 때문입니다. 그에게 철학은 늘 「제대로 살고 있는가」와 같은 종류의 물음이었습니다.
카를 비트겐슈타인 1847–1913 · 철강 레오폴디네 1850–1926 · 피아노 한스 1877–1902 자살 헤르미네 1874–1950 회고록 헬레네 1879–1956 루돌프 1881–1904 자살 마르가레테 1882–1958 클림트 초상 쿠르트 1878–1918 자살 파울 1887–1961 왼손 피아노 루트비히 1889–1951 철학 가문의 재산은 1919년 루트비히가 자기 몫 전부를 형제들에게 넘기면서 그의 삶에서 사라진다. 1938년 병합 이후 남은 가족은 뉘른베르크법상 유대인으로 분류되었고, 해외 자산을 제국은행에 넘기는 대가로 두 누이의 신분을 바꾸는 거래가 이루어진다.
그림 2 — 비트겐슈타인가의 8남매. 빨간 칸은 자살한 세 형입니다. 이 집안의 부(富)와 파국은 그의 철학이 취한 금욕적이고 도덕적으로 절박한 어조의 배경입니다.

루트비히는 열네 살까지 집에서 교육받았고, 1903년 린츠의 실업계 학교(Realschule)에 진학해 1906년까지 다녔습니다. 성적은 고르지 않았고, 학교 생활은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린츠와 히틀러 — 자주 인용되지만 근거가 약한 이야기. 아돌프 히틀러도 같은 1889년생으로 같은 시기 린츠의 같은 학교에 다녔습니다(히틀러는 유급으로 두 학년 아래). 두 사람이 서로 알았는가, 나아가 비트겐슈타인이 히틀러의 반유대주의를 촉발했다는 킴벌리 코니시의 『린츠의 유대인』(1998)의 주장은 학계에서 근거 없는 추론으로 널리 기각되었습니다. 학교 사진에 두 사람이 함께 찍혔다는 주장 역시 확정된 바 없습니다. 이 문서에서는 「같은 학교에 겹치는 시기가 있었다」는 사실 이상은 주장하지 않습니다. 근거 약함

L.2공학에서 논리학으로 Berlin, Manchester, Jena · 1906–1911

He came to philosophy from aeronautics. Designing a propeller led him to the mathematics of variable-density gas flow, that led to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 and that led to Frege — who told him to go to Russell.

1906년 베를린-샤를로텐부르크 공과대학에서 기계공학을 공부했고, 1908년 영국 맨체스터 대학으로 옮겨 항공공학 연구자로 등록했습니다. 처음에는 더비셔 글로솝의 상층 대기 관측소에서 연을 띄우는 일을 했고, 이후 제트 반동식 프로펠러 — 회전 날개 에서 연소 가스를 뿜어 회전력을 얻는 방식 — 를 설계해 1911년 영국 특허를 받았습니다. 이 원리는 훗날 헬리콥터의 팁제트 로터로 실현됩니다.

프로펠러 설계는 그를 미분방정식으로, 미분방정식은 수학의 기초로 밀어 넣었습니다. 러셀의 『수학의 원리』(1903)와 프레게의 『산수의 근본법칙』을 읽고 1911년 여름 예나로 프레게를 찾아갑니다. 프레게는 그에게 케임브리지의 러셀에게 가라고 권했습니다.

눈여겨볼 것

비트겐슈타인의 출발점은 철학 교육이 아니라 공학이었습니다. 『논고』의 문체 — 번호가 매겨진 명제, 군더더기 없는 진술, 「구조」와 「형식」이라는 어휘, 그리고 명제를 기계처럼 조립되는 것으로 보는 시각 — 은 이 배경 없이는 설명되지 않습니다. 6부에서 다룰 「논고 = 기호주의 AI의 헌장」이라는 유비도 여기서 시작합니다. 설계도를 그리듯 언어를 그린 사람이 쓴 책이기 때문입니다.

L.3러셀, 케임브리지, 그리고 노르웨이 Cambridge and Skjolden · 1911–1914

Russell went from calling him "an unknown German… obstinate and perverse" to calling him the most perfect example of genius he had ever known — in about a year. Then Wittgenstein left for a hut in Norway, because Cambridge was too easy to talk in.

1911년 10월, 예고 없이 러셀의 연구실 문을 두드린 청년에 대해 러셀은 처음에는 회의적이었습니다. 몇 달 만에 평가가 뒤집혔습니다. 1912년 트리니티 칼리지에 정식 등록했고, 러셀은 자신이 논리학의 근본 문제를 더 밀고 갈 사람은 비트겐슈타인이라고 판단하게 됩니다.

"He was perhaps the most perfect example I have ever known of genius as traditionally conceived: passionate, profound, intense, and dominating."

"그는 전통적으로 이해되어 온 의미의 천재에 내가 아는 한 가장 완벽하게 들어맞는 사람이었다 — 정열적이고, 깊고, 격렬하고, 압도적인."

— 버트런드 러셀, 『자서전』 2권

이 시기의 가장 중요한 인간관계는 수학과 학생 데이비드 핀센트였습니다. 두 사람은 1912–13년 아이슬란드와 노르웨이를 함께 여행했고, 핀센트는 비트겐슈타인이 자기 생각을 시험해 보던 유일한 상대였습니다. 핀센트는 1918년 비행 사고로 죽고, 『논고』는 그에게 헌정됩니다.

1913년 가을 비트겐슈타인은 노르웨이 스콜덴의 피오르 끝으로 들어가 오두막을 짓고 혼자 논리학을 붙들었습니다. 이 시기의 산물이 「논리에 관한 노트」(1913)와 「무어에게 노르웨이에서 구술한 노트」(1914)입니다. 『논고』의 뼈대 — 말할 수 있는 것과 보일 뿐인 것의 구별, 논리 상항은 대표하지 않는다는 근본 사상 — 이 여기서 잡힙니다.

왜 오두막인가. 그는 평생 반복해서 고립을 택했습니다(노르웨이 1913–14와 1936–37, 아일랜드 1948). 이유는 낭만이 아니라 방법입니다. 그는 케임브리지에서는 말이 너무 쉽게 나온다고 생각했습니다. CV 1948에 가까운 취지의 언급이 있듯, 그에게 사유는 「저항이 있는 매질」 속에서만 진행됩니다. 후기 철학의 방법 — 사례를 하나씩 손에 들고 천천히 들여다보기 — 도 같은 태도의 연장입니다.

L.4전쟁, 포로수용소, 그리고 『논고』 The Eastern Front, Monte Cassino · 1914–1919

He volunteered although a hernia exempted him, asked repeatedly to be posted where the danger was worst, was decorated for it, and finished the Tractatus on leave in 1918. He was carrying the manuscript in his rucksack when he was taken prisoner in Italy.

1914년 8월, 탈장으로 병역 면제 대상이었음에도 오스트리아-헝가리 군에 자원입대했습니다. 처음에는 비스와강의 경비정에서, 이어 포병 공창에서 근무했지만 본인의 거듭된 요청으로 최전방 관측소로 옮겨 갔습니다. 1916년 브루실로프 공세 때의 근무로 무공 훈장을 받았습니다. 위험을 자청한 이유에 대해 그는 일기에 죽음에 가까이 가야 자기 자신을 알 수 있으리라는 취지로 적었습니다.

이 전쟁 일기(암호로 쓴 개인 항목과 논리학 항목이 한 권 안에 나란히 적힌 노트)가 훗날 『1914–1916 노트북』으로 출간됩니다. 여기서 두 개의 층 — 논리학삶의 의미 — 이 같은 노트에서 자라 결국 『논고』의 6.4 이후 부분(윤리·죽음·신비로운 것)으로 이어집니다. 『논고』를 순수 논리학 저작으로만 읽으면 이 층이 통째로 사라집니다.

1918년 여름 휴가 중 『논고』 원고가 완성됩니다. 같은 해 11월 이탈리아 전선에서 포로가 되어 몬테카시노 수용소에 1919년 8월까지 억류되었고, 배낭 속 원고를 러셀과 프레게에게 보내는 데 성공합니다. 프레게는 이해하지 못했고, 러셀은 이해했지만 비트겐슈타인이 보기에는 결정적인 지점에서 잘못 이해했습니다.

톨스토이의 복음서. 갈리치아 전선의 한 서점에서 그는 톨스토이의 『요약 복음서』를 샀고, 전쟁 내내 지니고 다니며 거의 외우다시피 했습니다. 동료들은 그를 「복음서를 든 사람」이라 불렀습니다. 『논고』 6.4 이후의 윤리·종교 관련 명제들은 이 독서와 떼어 놓고 읽기 어렵습니다.

L.5재산의 포기와 시골 초등학교 교사 Giving it all away · Trattenbach, Puchberg, Otterthal · 1919–1926

In 1919 he signed away one of Europe's great fortunes — deliberately to relatives who were already rich, so that the money would corrupt nobody new — and became a village schoolteacher. It went badly, and it produced the only other book he published in his lifetime: a spelling dictionary for children.

1919년, 아버지에게서 상속받은 막대한 재산을 전액 형제들에게 넘깁니다. 공증인이 「경제적 자살」이라 표현할 정도의 결정이었고, 특히 이미 부유한 형제들에게 넘긴 것이 핵심입니다. 가난한 이에게 주면 그 돈이 그 사람을 망칠 것이라고 그는 판단했습니다. 이후 죽을 때까지 그는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그는 『논고』로 철학의 문제가 본질적으로 최종 해결되었다고 믿었으므로, 철학을 직업으로 삼을 이유가 없었습니다. 교원 양성 과정을 마치고 1920–26년 오스트리아 남부 산간의 초등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 트라텐바흐, 푸흐베르크 암 슈네베르크, 오터탈.

교사 비트겐슈타인은 재능 있는 아이에게는 헌신적이었고 그렇지 않은 아이에게는 가혹했습니다. 체벌이 흔하던 시대 기준으로도 그의 체벌은 문제가 되었습니다. 1926년 오터탈에서 그가 때린 학생 요제프 하이트바우어가 쓰러진 사건이 결정적이었습니다. 그는 곧바로 사직했고, 이후 진행된 심리에서 법적 책임은 면했지만 1931년 친지들 앞에서 행한 이른바 「고백」의 주요 항목 중 하나가 이 사건이었습니다.

1926년 그는 『국민학교용 사전(Wörterbuch für Volksschulen)』을 냅니다. 시골 아이들이 실제로 틀리는 철자를 기준으로 표제어를 뽑은 작은 사전으로, 생전에 출간된 그의 두 번째이자 마지막 책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 「낱말의 쓰임을 관찰해서 목록으로 만드는 일」은 20년 뒤 후기 철학의 방법 그 자체가 됩니다.

전기와 철학이 만나는 지점

『논고』를 쓴 사람은 언어의 이상적 형식을 찾았습니다. 시골 학교의 교사는 여섯 살짜리가 「Kuh」를 어떻게 잘못 쓰는지, 어떤 손짓을 곁들여야 낱말이 전달되는지를 매일 봤습니다. 후기 철학의 출발점인 PI §1–§7 — 아이에게 낱말을 가르치는 장면 — 은 사고 실험이 아니라 그가 6년 동안 실제로 한 일입니다.

L.6정원사, 그리고 건축가 Hütteldorf and Kundmanngasse · 1926–1928

Between the schoolroom and philosophy he worked as a monastery gardener, then spent two years designing a house for his sister with a precision that became famous — raising a finished ceiling by three centimetres because the proportion was wrong.

사직 후 그는 휘텔도르프의 수도원에서 정원사 조수로 일했고, 수도원 입회를 진지하게 고려했다가 만류당했습니다.

1926–28년, 누이 마르가레테(그레틀)를 위해 빈 쿤트만가세에 집을 설계합니다. 아돌프 로스의 제자였던 건축가 파울 엥겔만과 함께 시작했으나, 실질적인 설계는 비트겐슈타인이 장악했습니다. 장식이 완전히 배제된 이 집은 문 손잡이와 라디에이터까지 전부 새로 도면을 그려 제작했고, 거의 완성된 방의 천장을 비례가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3센티미터 올리게 한 일화가 유명합니다.

"You think philosophy is difficult enough, but I tell you, it is nothing to the difficulty of being a good architect."

"철학이 어렵다고들 하는데, 좋은 건축가가 되는 어려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 비트겐슈타인이 엥겔만에게 한 말로 전해짐

누이 헤르미네는 이 집이 「신들을 위한 거처이지 작은 인간을 위한 집이 아니다」라고 썼습니다. 이 평가는 『논고』에 대한 평가로 읽어도 그대로 들어맞습니다. 건축은 그가 완벽하게 정확한 형식을 추구한 마지막 작업이었습니다. 다음 해에 그 추구 자체가 무너집니다.

L.7케임브리지 귀환과 두 번째 철학 The return, the Circle, and the break · 1929–1939

He came back in 1929 believing the Tractatus needed a small repair. Within two years he had concluded it needed demolition. The Vienna Circle, meanwhile, had adopted the book as its founding document — a misunderstanding he never managed to correct.

1929년 1월, 램지와 케인스의 설득으로 케임브리지에 돌아옵니다. 케인스가 아내에게 쓴 편지의 첫 줄은 「신이 도착했다. 5시 15분 기차에서 그를 만났다」였습니다.

학위가 없었기에 『논고』를 박사학위 논문으로 제출했고, 러셀과 무어가 심사했습니다. 구술시험은 옛 친구들의 대화에 가까웠고, 끝에 비트겐슈타인이 두 사람의 어깨를 두드리며 「걱정 말게, 자네들이 이걸 절대 이해 못 하리라는 건 나도 알아」라고 했다는 이야기가 전합니다. 무어의 심사 보고서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It is my personal opinion that Mr Wittgenstein's thesis is a work of genius; but, be that as it may, it is certainly well up to the standard required for the Cambridge degree of Doctor of Philosophy."

"비트겐슈타인 씨의 논문이 천재의 작품이라는 것이 저의 개인적 견해입니다. 그것이야 어떻든, 이 논문이 케임브리지 철학박사 학위에 요구되는 수준을 충분히 넘어선다는 점은 확실합니다."

— G. E. 무어의 심사 보고서, 1929

1929년은 그가 유일하게 생전에 발표한 철학 논문 「논리적 형식에 관한 몇 가지 소견」을 쓴 해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는 발표 자리에서 이 논문을 읽지 않고 대신 다른 이야기를 했으며, 곧 논문 자체를 무가치하다고 폐기했습니다. 이유는 2.1 색채 배제 문제에서 다룹니다 — 『논고』 체계를 무너뜨린 바로 그 균열입니다.

1930년대의 작업은 대부분 구술과 강의였습니다. 『청색책』(1933–34)과 『갈색책』(1934–35)이 그 산물입니다. 1936–37년에는 다시 노르웨이 오두막으로 들어가 『탐구』 1부의 앞부분을 씁니다. 1939년 무어의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 철학 교수가 되었고, 같은 해 영국 시민권을 얻었습니다.

1938–39년의 가족. 오스트리아 병합 이후 비트겐슈타인가는 뉘른베르크법상 유대인으로 분류되었습니다. 가족은 스위스에 있던 막대한 외화 자산을 제국은행에 넘기는 대가로 빈에 남은 두 누이의 법적 신분을 「혼혈(Mischling)」로 바꾸는 거래를 성사시킵니다. 루트비히도 이 협상에 관여했습니다. 형 파울은 이 거래에 반대했고, 이 일로 형제 관계는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1935년의 소련행. 그는 소련으로 이주해 육체노동자로 살 것을 진지하게 계획했고, 1935년 9월 레닌그라드와 모스크바를 방문했습니다. 카잔 대학의 철학 교수직을 제안받았지만 원하던 것은 그것이 아니었고, 육체노동 정착은 허가되지 않았습니다. 그는 소련 체제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직업 철학자」로 사는 삶에서 벗어나려고 이 시도를 했습니다.

L.8전쟁, 교수직의 포기, 그리고 죽음 Guy's Hospital to Storey's End · 1939–1951

A professor of philosophy at Cambridge spent the war as a hospital porter and then a laboratory assistant in a wound-shock unit, resigned the chair in 1947 as soon as he could, wrote On Certainty while dying, and said at the end that he had had a wonderful life.

2차 대전 중 그는 교수직을 유지한 채 런던 가이 병원의 잡역 인부로 일했습니다(1941–43). 병원 사람들은 그가 누구인지 대체로 몰랐습니다. 이후 뉴캐슬 로열빅토리아 병원의 부상 쇼크 연구팀에서 실험 조수로 일하며, 맥박·호흡 측정 장치를 직접 개조하기도 했습니다.

1947년, 그는 케임브리지 교수직을 사임합니다. 철학을 가르치는 일이 학생들에게 해롭다고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반복해서 제자들에게 학계를 떠나 실제 일을 하라고 권했고, 실제로 몇몇은 그렇게 했습니다.

1948년 아일랜드 서부 코너마라의 로스로 오두막과 위클로의 농가에서 혼자 지내며 심리철학 원고를 대량으로 씁니다. 1949년에는 미국 이타카의 노먼 맬컴을 방문했고, 그곳에서 무어의 「나는 여기에 손이 하나 있다는 것을 안다」 논변을 다시 붙들게 됩니다. 이것이 마지막 저작 『확실성에 관하여』의 출발점입니다.

1949년 말 전립선암 진단을 받았습니다. 마지막 1년 반 동안, 병세 속에서 그는 놀라운 밀도로 씁니다. 『확실성에 관하여』의 마지막 항목은 죽기 이틀 전에 적혔습니다.

1951년 4월 29일, 케임브리지의 주치의 에드워드 베번의 집에서 죽었습니다. 예순두 살이었습니다. 의식을 잃기 전 베번 부인에게 남긴 말이 전합니다.

"Tell them I've had a wonderful life."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 그들에게 전해 주세요."

— 노먼 맬컴, 『비트겐슈타인 회상록』에 기록된 마지막 말

케임브리지 어센션 패리시 묘지에 묻혔습니다. 가톨릭식 장례로 치러졌는데, 이것이 그의 뜻에 맞았는지는 당시 친구들 사이에서도, 지금도 논란입니다.

L.9유고 — 남겨진 2만 쪽 The Nachlass

He published one philosophy book and one article in his lifetime, and left roughly twenty thousand pages of manuscript. Almost everything we call "the later Wittgenstein" is an editorial construction from that pile — which is why so many disputes about his views are really disputes about editing.

생전 출간: 『논고』(1921/22), 「논리적 형식에 관한 몇 가지 소견」(1929, 본인이 폐기), 『국민학교용 사전』(1926), 그리고 서평 한 편. 그게 전부입니다.

사후에 남은 것은 약 2만 쪽의 수고(手稿)와 타자본이었습니다. 유언에 따라 러시 리스, 거트루드 엘리자베스 마거릿 앤스컴, 게오르크 헨리크 폰 브리크트 세 사람이 유고 관리자가 되어 40년에 걸쳐 편집·출간했습니다. 앤스컴의 영역이 사실상 표준이 되었습니다.

편집이 곧 해석이다. 『탐구』조차 완결된 원고가 아닙니다. 1부는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정리한 타자본에 가깝지만, 2부(현재의 PPF)는 편집자들이 별도 원고 뭉치를 배치한 것입니다. 2009년 해커·슐테의 4판은 2부를 「심리철학 — 단편」으로 개칭하고 번호를 다시 매겼으며, 앤스컴의 유명한 번역어 몇 가지도 손봤습니다. 『확실성에 관하여』·『쪽지』·『수학의 기초』도 모두 편집물입니다. 따라서 「비트겐슈타인은 X라고 말했다」는 주장은 종종 「편집자들이 X를 이 자리에 놓았다」는 주장입니다. 1990년대 이후 베르겐 전자판(Bergen Electronic Edition)이 원고 전체를 이미지·전사본으로 공개하면서 이 문제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주변 인물 빠른 참조The people around him

고틀로프 프레게1848–1925
현대 논리학의 창시자. 『논고』의 뜻/의미 구별과 함수적 명제관의 원천이며, 비트겐슈타인을 러셀에게 보낸 사람.
버트런드 러셀1872–1970
스승이자 후원자. 『논고』 영역본에 서문을 썼으나 비트겐슈타인은 그 서문이 책을 오해했다고 여겼고, 두 사람은 결국 멀어진다.
G. E. 무어1873–1958
1914년 노르웨이 구술 노트의 수신자, 1929년 학위 심사자, 1939년 교수직의 전임자. 「나는 손이 있음을 안다」는 그의 상식 옹호가 『확실성에 관하여』를 촉발한다.
데이비드 핀센트1891–1918
케임브리지 시절의 가장 가까운 친구. 『논고』의 헌정 대상. 비행 사고로 사망.
프랭크 램지1903–1930
열아홉에 『논고』 영역을 도왔고, 유일하게 그와 대등하게 논쟁한 사람. 스물여섯에 요절. 그의 비판이 전환기를 앞당겼다.
피에로 스라파1898–1983
케임브리지의 이탈리아 경제학자. 『탐구』 서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착상들」을 그의 비판에 빚졌다고 밝힌다.
모리츠 슐리크 · 프리드리히 바이스만1882–1936 · 1896–1959
빈학단의 핵심. 1927–32년 비트겐슈타인과 직접 대화했고, 그 기록이 전환기를 재구성하는 1차 자료다.
프랜시스 스키너1912–1941
수학과 학생, 1930년대의 반려. 비트겐슈타인의 권유로 학계를 떠나 공장 일을 했고, 스물아홉에 소아마비로 죽는다.
엘리자베스 앤스컴1919–2001
제자·유고 관리자·번역자. 그의 영역이 곧 영어권의 비트겐슈타인이 되었고, 본인도 20세기 도덕철학의 대가가 된다.
폰 브리크트 · 러시 리스1916–2003 · 1905–1989
나머지 두 유고 관리자. 폰 브리크트는 케임브리지 교수직 후임이기도 하며, 유고의 체계적 목록을 만들었다.
2부

『논리철학논고』 — 말할 수 있는 것의 한계

Tractatus Logico-Philosophicus · 1918 / 1921 / 1922

75쪽짜리 책 한 권이 철학의 모든 문제를 「본질적으로 최종적으로」 풀었다고 선언합니다. 일곱 개의 명제와 그 아래 소수점으로 매달린 주석들. 이 부에서는 일곱 개를 순서대로 따라가며, 각각이 무엇을 주장하고 왜 그렇게 배치되었는지, 그리고 어디서 무너지게 되는지를 봅니다. 『논고』는 저작권이 소멸했으므로 여기서는 원문(독일어 · 오그던 영역)을 그대로 인용합니다.

1.0일곱 개의 명제와 소수점 The form of the bookTLP 각주 · 머리말

The book's shape is its argument. Seven numbered propositions carry everything; the decimals under them are comments, and the number of decimal places tells you how much weight a remark carries. Proposition 7 has no comments at all — there is nothing to add to silence.

『논고』는 첫 쪽에 붙은 각주 하나로 자기 형식을 설명합니다. 명제 n.1, n.2, n.3은 명제 n에 대한 주석이고, n.m1, n.m2n.m에 대한 주석이며, 소수점 자릿수가 늘어날수록 논리적 비중은 낮아집니다. 즉 이 책은 목차이자 본문입니다.

1

Die Welt ist alles, was der Fall ist.

The world is everything that is the case.

세계는 일어나는 모든 것이다.

2

Was der Fall ist, die Tatsache, ist das Bestehen von Sachverhalten.

What is the case, the fact, is the existence of atomic facts.

일어나는 것, 곧 사실이란 사태들이 성립함이다.

3

Das logische Bild der Tatsachen ist der Gedanke.

The logical picture of the facts is the thought.

사실들의 논리적 그림이 사고이다.

4

Der Gedanke ist der sinnvolle Satz.

The thought is the significant proposition.

사고는 뜻을 지닌 명제이다.

5

Der Satz ist eine Wahrheitsfunktion der Elementarsätze.

Propositions are truth-functions of elementary propositions.

명제는 요소명제들의 진리함수이다.

6

Die allgemeine Form der Wahrheitsfunktion ist: [p̄, ξ̄, N(ξ̄)].

The general form of truth-function is: [p̄, ξ̄, N(ξ̄)]. This is the general form of proposition.

진리함수의 일반 형식은 [p̄, ξ̄, N(ξ̄)]이다. 이것이 명제의 일반 형식이다.

7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일곱 개를 나란히 놓고 보면 논증의 사슬이 보입니다. 세계는 사실들이다(1) → 사실은 사태의 성립이다(2) → 사태를 그린 것이 사고다(3) → 사고는 뜻 있는 명제다(4) → 명제는 요소명제의 진리함수다(5) → 그 함수의 일반형은 이것이다(6) → 그 바깥은 침묵이다(7). 1부터 6까지는 언어가 세계에 닿는 단 하나의 방식을 좁혀 들어가는 과정이고, 7은 그 좁힘의 결과 바깥에 남은 것에 대한 처분입니다.

주 명제 주석 가지 (소수점 자릿수 = 논리적 비중의 낮아짐) 123 45 주석 여섯 개뿐 사태 · 대상 · 그림 이론 사고 · 이름 · 논리적 구문 뜻 · 진리표 · 말함과 보임 진리함수 · N 연산자 · 유아론 7 주석 없음 — 침묵에는 덧붙일 것이 없다 (명제 6은 5와 대칭적으로 방대하며 6.4 이후가 윤리·신비)
그림 3 — 『논고』의 번호 체계. 가지의 길이는 주석의 양을 도식적으로 나타낸 것입니다. 확정적인 두 사실만 표시했습니다 — 명제 1에는 주석이 여섯 개(1.1–1.21)뿐이고, 명제 7에는 하나도 없습니다.
머리말의 두 문장. 비트겐슈타인은 서문에서 「무릇 말해질 수 있는 것은 명료하게 말해질 수 있고,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고 쓰고, 곧이어 여기 전달된 사고의 진리성은 「불가침이며 최종적」이라고 단언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에 덧붙입니다 — 이 문제들이 풀렸을 때 얼마나 적은 것이 이루어졌는가를 자기는 알고 있다고. 이 두 어조의 병존이 『논고』 전체를 지배합니다.

1.1명제 1 — 세계는 사물이 아니라 사실들의 총체다 The world is the totality of facts, not of thingsTLP 1–1.21

The opening move is an ontological one that looks trivial and is not: the world is made of facts, not of things. A list of everything that exists does not describe the world; only a list of how those things stand to one another does.

1.1

Die Welt ist die Gesamtheit der Tatsachen, nicht der Dinge.

The world is the totality of facts, not of things.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들의 총체가 아니다.

왜 이것이 중요한가.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물체의 완전한 목록을 받았다고 해 봅시다 — 「의자, 책, 탁자, …」. 그 목록은 세계를 기술하지 못합니다. 책이 탁자 위에 있는지 아래에 있는지가 빠졌기 때문입니다. 세계를 기술하려면 사물이 아니라 사물들이 어떻게 놓여 있는가를 말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떻게 놓여 있는가」는 정확히 명제가 말하는 것입니다. 명제 1은 그러니까 존재론적 주장인 동시에, 이 책 전체가 왜 언어를 분석하는지에 대한 예고입니다.

1.13은 「논리적 공간 속의 사실들이 세계이다」라고 말합니다. 여기서 논리적 공간(logischer Raum)이라는 핵심 개념이 등장합니다. 가능한 사태들의 전체가 이루는 공간이 있고, 실제 세계는 그 공간 안의 한 점 — 어떤 사태들은 성립하고 어떤 것은 성립하지 않는 하나의 배치 — 입니다. 1.21: 「어떤 하나는 성립하거나 성립하지 않을 수 있으며, 나머지 전부는 그대로일 수 있다.」 즉 사태들은 서로 독립적입니다. 이 독립성 가정이 나중에 『논고』를 무너뜨립니다(2.1).

1.2명제 2 — 사태, 대상, 그리고 그림 이론 States of affairs, objects, and the picture theoryTLP 2–2.225

Proposition 2 supplies the machinery. Facts decompose into states of affairs, states of affairs into simple objects, and then — the famous move — a proposition is a picture: its elements stand for objects, and their arrangement says that the objects are arranged that way. What a picture cannot picture is the very thing that lets it picture at all: logical form.

대상과 사태Objects and states of affairs2.01–2.063

2.01 「사태는 대상들(존재자들, 사물들)의 결합이다.」 2.02 「대상은 단순하다.」 2.021 「대상들은 세계의 실체를 이룬다. 그러므로 그것들은 복합적일 수 없다.」

비트겐슈타인은 단순 대상이 무엇인지 단 하나의 예도 들지 않습니다. 이것은 부주의가 아니라 방법입니다. 그의 논변은 선험적입니다 — 명제가 확정된 뜻을 가지려면 분석이 어딘가에서 끝나야 하고, 끝나는 곳에 있는 것을 「대상」이라 부르자는 것입니다. 후기의 그는 바로 이 논변을 정면으로 공격합니다(PI §46–§64, 3.2).

그림 이론The picture theory2.1–2.225

2.1

Wir machen uns Bilder der Tatsachen.

We make to ourselves pictures of facts.

우리는 사실들의 그림을 만든다.

2.15

That the elements of the picture are combined with one another in a definite way, represents that the things are so combined with one another.

그림의 요소들이 특정한 방식으로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은, 사물들이 그렇게 서로 결합되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것이 『논고』의 심장입니다. 그림이 무언가를 그리는 것은 그림의 요소가 대상을 대신하고(2.13), 요소들의 배열이 대상들의 배열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법정에서 사고 현장을 모형 자동차와 인형으로 재현하는 장면을 비트겐슈타인이 신문에서 읽고 착상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 진위는 확실치 않지만, 그림 이론이 무엇인지 이보다 잘 설명하는 예는 없습니다. 모형차가 실제 차를 닮았기 때문에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모형차와 실제 차가 같은 방식으로 배열될 수 있기 때문에 그립니다.

2.18

What every picture, of whatever form, must have in common with reality in order to be able to represent it at all — rightly or falsely — is the logical form, that is, the form of reality.

어떤 형식의 그림이든, 실재를 — 옳게든 그르게든 — 그리기 위해 실재와 공유해야 하는 것은 논리적 형식, 곧 실재의 형식이다.

2.172

The picture, however, cannot represent its form of representation; it shows it forth.

그러나 그림은 자신의 묘사 형식을 묘사할 수 없다. 그림은 그것을 보여 줄 뿐이다.

여기서 『논고』의 가장 중요한 구별이 태어납니다. 그림은 「사물들이 이러이러하게 놓여 있다」고 말할 수 있지만, 「나는 사물들과 이러이러한 형식을 공유한다」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그 형식은 그림이 그림이기 위한 조건이지 그림의 내용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말함(sagen)과 보임(zeigen)의 구별 — 이것이 결국 명제 7의 침묵을 낳습니다.

언어 · 명제 "a" "b" "c" R R 사고 · 논리적 그림 세계 · 사실 세 층이 공유하는 것 논리적 형식 = 요소가 셋이고, 일렬로 배열되며, 자리가 서로 다르다 이 공유 덕분에 그림은 참일 수도 거짓일 수도 있다 (2.21) 그러나 4.12 — 그림은 자기가 실재와 공유하는 바로 그 형식만은 그릴 수 없다. 형식은 말해지지 않고 보일 뿐이다 (4.1212)
그림 4 — 그림 이론의 삼층 구조. 이름이 대상을 대신하고, 이름들의 배열이 대상들의 배열을 나타냅니다. 이 대응이 성립하려면 세 층이 같은 형식을 공유해야 하는데, 그 형식 자체는 어느 층에서도 진술될 수 없습니다.
시뮬레이션 1 · 그림 이론 — 참·거짓·무의미의 차이

위쪽은 세계의 사실(대상 세 개의 배열), 아래쪽은 그것을 그리려는 명제(이름 세 개의 배열)입니다. 이름의 자리를 바꿔 보십시오. 배열이 맞으면 , 틀리면 거짓입니다. 둘 다 뜻은 있습니다. 그런데 「이름 하나 빼기」를 누르면 명제는 거짓이 되는 게 아니라 아예 사실을 그릴 수 없게 됩니다 — 논리적 형식이 어긋났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거짓(falsch)무의미(unsinnig)의 차이입니다.

6부에서 다시 만날 지점

그림 이론은 의미가 세계와의 대응에서 온다는 이론입니다. 오늘날 이 입장의 후예가 「LLM은 세계에 닿아 있지 않으므로 의미를 가질 수 없다」는 근거 짓기(grounding) 논변입니다. 5.10에서 벤더·콜러의 「문어」 사고실험을 다룰 때, 그것이 왜 사실상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논변인지 보게 됩니다. 그리고 그 반박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에게서 나옵니다.

1.3명제 3 — 사고는 사실의 논리적 그림이다 The thought is the logical picture of the factsTLP 3–3.5

Thought is not a psychological process here but a logical one: a thought just is a picture with a logical form. Hence the striking claim that we cannot think anything illogical — not because we are careful, but because an illogical "thought" would not be a thought.

3.03

We cannot think anything unlogical, for otherwise we should have to think unlogically.

우리는 비논리적인 것은 아무것도 생각할 수 없다. 그러려면 비논리적으로 생각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명제는 자주 오해됩니다. 「사람이 논리적으로 사고한다」는 심리학적 주장이 아닙니다. 「둥근 사각형」을 생각해 보려 할 때 실제로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 물어보면, 아무것도 생각하고 있지 않다는 것 — 그것이 3.03의 요점입니다. 논리는 사고에 부과된 규칙이 아니라 사고임의 조건입니다. 이것이 6.13의 「논리는 초월적이다」로 이어집니다.

이름과 명제기호Names and the propositional sign3.14–3.26

3.202 「명제에 쓰인 단순한 기호를 이름이라 한다.」 3.203 「이름은 대상을 의미한다. 대상이 이름의 의미(Bedeutung)이다.」 3.14 「명제기호는 그 요소들, 곧 낱말들이 그 안에서 특정한 방식으로 관계 맺고 있다는 데 있다. 명제기호는 하나의 사실이다.」

3.14의 마지막 문장이 결정적입니다. 문장은 낱말들의 목록이 아니라, 낱말들이 특정한 배열을 이루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3.1432이 이를 못 박습니다 — 「‘복합기호 aRb가 a는 b에 대해 R의 관계에 있음을 말한다’가 아니라, ‘a’가 ‘b’에 대해 어떤 관계에 있음이 aRb를 말한다.」

논리적 구문론Logical syntax3.31–3.34

일상 언어는 사고를 위장합니다(4.002). 「소크라테스는 동일하다」 같은 문장이 문법적으로 멀쩡해 보이는 것은 언어의 겉모습이 논리적 형식을 가리기 때문입니다. 3.325는 그래서 논리적 구문론의 규칙을 따르는 기호법 — 프레게와 러셀의 개념 표기법 같은 — 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이 요구가 20세기 형식의미론과 논리 프로그래밍의 프로그램이 됩니다(5.1).

1.4명제 4 — 뜻, 진리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 Sense, truth-tables, and what cannot be saidTLP 4–4.5

Proposition 4 is where the Tractatus becomes a technical achievement and a philosophical bomb at once. It contains the invention of the truth-table as a notation, the definition of philosophy as an activity rather than a doctrine, and the say/show distinction stated flatly: what can be shown cannot be said.

뜻을 이해한다는 것Understanding a proposition4.021–4.026

4.024

To understand a proposition means to know what is the case, if it is true.

명제를 이해한다는 것은, 그것이 참일 경우 무엇이 성립하는지를 안다는 것이다.

이 한 줄이 20세기 진리조건 의미론의 정식화입니다. 「눈이 희다」의 뜻은 눈이 흴 조건입니다. 데이비슨과 몬터규의 형식의미론이 여기서 출발합니다. 그리고 4.021의 「나는 명제의 뜻이 나에게 설명되지 않고도 명제를 이해한다」가 왜 중요한지 주목하십시오 — 우리는 한 번도 들어 본 적 없는 문장을 이해합니다. 이것이 합성성(compositionality)의 요구이고, 촘스키에서 형식의미론까지 언어학의 중심 문제가 됩니다.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Philosophy as activity4.003–4.116

4.003

Most propositions and questions, that have been written about philosophical matters, are not false, but senseless. … And so it is not to be wondered at that the deepest problems are really no problems.

철학적 문제에 관해 쓰인 명제와 물음 대부분은 거짓이 아니라 무의미하다. … 그러니 가장 깊은 문제들이 사실은 아무 문제도 아니라는 것이 놀랄 일은 아니다.

4.112

Philosophy is not a theory but an activity. … The result of philosophy is not a number of "philosophical propositions", but to make propositions clear.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다. … 철학의 결과는 「철학적 명제들」이 아니라 명제들이 명료해지는 것이다.

놀라운 사실: 이 문장은 전기와 후기에 모두 유효한, 사실상 유일한 명제입니다. 『탐구』에서 철학의 방법이 완전히 달라져도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이라는 규정은 살아남습니다 (PI §109, §126, §128). 두 철학을 잇는 다리가 있다면 여기입니다.

말함과 보임Saying and showing4.12–4.1212

4.121

Propositions cannot represent the logical form: this mirrors itself in the propositions. That which mirrors itself in language, language cannot represent. … Propositions show the logical form of reality.

명제는 논리적 형식을 묘사할 수 없다. 그것은 명제 안에 비칠 뿐이다. 언어 안에 스스로를 비추는 것을 언어는 묘사할 수 없다. … 명제는 실재의 논리적 형식을 보여 준다.

4.1212

Was gezeigt werden kann, kann nicht gesagt werden.

What can be shown cannot be said.

보일 수 있는 것은 말해질 수 없다.

이 구별로 『논고』는 세계를 세 구역으로 나눕니다. 말할 수 있는 것(자연과학의 명제), 뜻이 없지만 무의미하지는 않은 것(논리와 수학 — 참이지만 세계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항진명제), 말할 수 없고 오직 보일 뿐인 것(논리적 형식, 윤리, 미학, 삶의 의미, 세계가 있다는 사실 자체). 그리고 『논고』 자신의 명제들은 세 번째 구역에 속합니다. 이것이 6.54의 자기 파괴로 이어집니다.

말할 수 있는 것 자연과학의 명제 전체 (4.11) 참이거나 거짓 · 뜻(Sinn)이 있음 "눈이 희다" · "질량은 에너지다" = 사태의 성립·비성립을 그림 테두리 = 논리와 수학 (6.1, 6.2) 뜻이 없음(sinnlos)이지 무의미(unsinnig)는 아님 보일 뿐인 것 말하려 하면 무의미(unsinnig) · 논리적 형식 그 자체 (4.12) · 윤리 · 미학 (6.421) · 삶의 의미 (6.521) · 세계가 있다는 것 (6.44) · 형이상학적 주체 (5.632) · 신 (6.432) · 『논고』 자신의 명제들 (6.54) → 그래서 사다리는 버려진다
그림 5 — 『논고』가 그은 경계. 안쪽만이 참·거짓을 가릴 수 있는 영역이고, 테두리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지만 기호 체계의 일부인 논리·수학이며, 바깥은 말하려는 순간 무의미가 됩니다. 『논고』 자신이 바깥에 놓인다는 것이 이 책의 마지막 반전입니다.

진리표의 발명The invention of the truth-table4.27–4.464

4.31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오늘날 논리학 교과서 첫 장에 나오는 진리표를 도입합니다. (동시기에 에밀 포스트도 독립적으로 도달했고, 프레게·페어스에게 선행 요소가 있지만, 표기법으로 확립한 것은 『논고』입니다.)

핵심 계산은 이렇습니다. 요소명제가 n개면 진리가능성은 2n개이고(4.27–4.28), 각 진리가능성에 참/거짓을 배당하는 방식 — 곧 서로 다른 명제 — 은 22n개입니다(4.42). n = 2일 때 16개이고, 비트겐슈타인은 5.101에서 그 16개를 전부 나열합니다.

4.46

In the one case the proposition is true for all the truth-possibilities … the truth-conditions are tautological. In the second case the proposition is false for all the truth-possibilities: the truth-conditions are self-contradictory.

한 극단에서 명제는 모든 진리가능성에 대해 참이다 — 진리조건이 항진적이다. 다른 극단에서는 모든 진리가능성에 대해 거짓이다 — 진리조건이 모순적이다.

4.461

Tautology and contradiction are without sense (sinnlos). … I know nothing about the weather when I know that it rains or does not rain.

항진명제와 모순명제는 뜻이 없다. … 비가 오거나 오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고 해서 날씨에 대해 아는 것은 없다.

여기서 논리학 전체의 지위가 결정됩니다. 논리의 명제들은 세계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습니다(5.43, 6.11). 참이지만 정보가 없습니다. 그것들은 세계의 비계(Gerüst)일 뿐입니다(6.124). 이 결론이 빈학단이 「형이상학은 무의미하다」를 끌어내는 데 쓴 지렛대가 됩니다.

시뮬레이션 2 · 진리표 기계 — 5.101의 열여섯 명제

요소명제 p, q의 진리가능성은 네 가지입니다. 그 네 칸에 참/거짓을 배당하는 방법은 정확히 16가지 — 그것이 두 요소명제로 만들 수 있는 모든 명제입니다. 슬라이더로 16개를 훑어보십시오. 맨 위(전부 참)와 맨 아래(전부 거짓)만이 뜻이 없고, 나머지 14개는 세계를 둘로 가릅니다. 아래 n을 늘리면 요소명제 수에 따라 명제의 수가 어떻게 폭발하는지 볼 수 있습니다.

왜 이 시뮬레이션이 6부와 연결되는가. 진리표는 명제의 의미를 완전히 기계적으로 계산할 수 있다는 최초의 증명입니다. 요소명제의 진리값만 주어지면 나머지는 전부 자동입니다. 이 착상이 그대로 회로 설계로, 그리고 기호주의 인공지능으로 내려갑니다. 『논고』의 세계에서 「이해」는 곧 계산입니다. 후기 비트겐슈타인이 부수는 것이 바로 이 등식입니다.

1.5명제 5 — 진리함수와 단 하나의 연산 Truth-functions and the N-operatorTLP 5–5.5

Proposition 5 makes the strongest claim in the book: every proposition is a truth-function of elementary propositions, and every truth-function can be generated by repeated application of a single operation. Logic needs no primitive constants at all — no "and", no "or", no "not" as things in the world.

4.0312

My fundamental thought is that the "logical constants" do not represent.

나의 근본 사상은 「논리 상항」이 대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나의 근본 사상(mein Grundgedanke)」이라 부른 유일한 명제입니다. 「그리고」, 「또는」, 「아니다」는 세계 속의 어떤 것을 가리키지 않습니다. 「p 그리고 q」에는 p, q 말고 제3의 대상 「그리고」가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들은 연산일 뿐입니다. 러셀이 논리 상항을 일종의 논리적 대상으로 다룬 데 대한 정면 반박이며(5.4), 『논고』가 러셀의 논리주의와 갈라지는 지점입니다.

N 연산자The N-operator5.5–5.502

비트겐슈타인은 한 걸음 더 나갑니다. 모든 진리함수는 단 하나의 연산을 반복 적용해 얻을 수 있습니다. 그 연산이 N(ξ̄) — 「주어진 명제들을 모두 동시에 부정하기」입니다(공동 부정, joint denial).

얻으려는 것N으로 쓰면설명
¬pN(p)하나만 넣고 부정
p ∧ qN(N(p), N(q))「¬p도 아니고 ¬q도 아니다」
p ∨ qN(N(p, q))「‘둘 다 아님’이 아니다」
p → qN(p, N(q))의 부정 형태로 전개∨와 ¬로 환원해 얻음

이것은 오늘날의 NOR 게이트입니다. 셰퍼가 1913년에 NAND/NOR 하나로 명제논리 전체를 표현할 수 있음을 증명했고, 비트겐슈타인은 그 결과를 알고 있었으며, 그것을 철학적 결론으로 바꾸었습니다 — 논리 상항이 여럿 있는 것처럼 보이는 것은 표기법의 사정일 뿐, 근본에는 한 개의 연산만 있다는 것입니다. 명제 6은 이 결론의 요약입니다. 「[p̄, ξ̄, N(ξ̄)]」는 요소명제들로부터 출발해 N을 반복 적용해 나오는 모든 것이라는 뜻입니다.

여기가 무너진다. N 연산자로 양화(모든 x에 대하여, 어떤 x가 존재하여)까지 처리하려면 무한히 많은 명제에 N을 한꺼번에 적용해야 합니다. 램지와 이후 논리학자들이 지적했듯 이 확장은 형식적으로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고, 오늘날 대부분의 해석자는 N 연산자 프로그램은 완수되지 않았다고 봅니다. 기술적 결함

인과와 미신Causation5.135–5.1362

5.1361

The events of the future cannot be inferred from those of the present. Superstition is the belief in the causal nexus.

미래의 사건들은 현재의 사건들로부터 추론될 수 없다. 인과 연결에 대한 믿음이 곧 미신이다.

흄의 결론을 논리적 형식의 문제로 다시 쓴 것입니다. 사태들은 서로 독립적이므로(1.21), 하나의 성립에서 다른 것의 성립을 논리적으로 끌어낼 길이 없습니다. 이 주제는 6.3의 귀납·자연법칙 논의에서 다시 나옵니다.

1.65.6 — 유아론, 언어의 한계, 형이상학적 주체 Solipsism and the limits of languageTLP 5.6–5.641

The most quoted line in the book is also the most misread.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 is not a claim about vocabulary size; it is the claim that there is no standpoint outside language from which to compare language with the world. The self that seemed to occupy such a standpoint turns out not to be in the world at all.

5.6

Die Grenzen meiner Sprache bedeuten die Grenzen meiner Welt.

The limits of my language mean the limits of my world.

내 언어의 한계가 내 세계의 한계를 의미한다.

흔한 오독. 이 문장은 「어휘가 많을수록 세계가 넓어진다」거나 「언어가 없으면 생각도 없다」는 뜻이 아닙니다. 논변은 이렇습니다. 언어의 한계를 바깥에서 그으려면 그 한계 너머에 무엇이 있는지 말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말하는 순간 그것은 이미 한계 안입니다(5.61). 그러므로 한계는 안에서만 그어질 수 있고, 한계 바깥은 「말할 수 없는 어떤 것」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음 그 자체입니다.

이 논변에서 유아론이 나옵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결론은 뜻밖입니다.

5.64

Here we see that solipsism strictly carried out coincides with pure realism. The I in solipsism shrinks to an extensionless point and there remains the reality co-ordinate with it.

여기서 우리는 엄밀히 관철된 유아론이 순수한 실재론과 일치함을 본다. 유아론의 나(自我)는 연장 없는 점으로 수축하고, 그것과 짝지어진 실재만이 남는다.

유아론을 끝까지 밀면 「내 세계」의 「내」가 아무 일도 하지 않게 되고, 결국 「세계」만 남습니다. 주체는 세계 안의 대상이 아니라 세계의 한계입니다(5.632). 이를 위한 비유가 5.633의 눈과 시야입니다.

시야 (= 세계 = 말할 수 있는 것 전체) 5.633 — 시야 안 어디에서도, 이것이 어떤 눈에 의해 보이고 있다는 결론은 나오지 않는다. .
그림 6 — 5.633의 눈과 시야. 시야 안에는 눈이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세계 안에는 「보고 있는 나」가 없습니다. 주체는 세계의 내용이 아니라 한계입니다.
6부의 예고

「언어의 한계 = 세계의 한계」는 LLM에 대해 특이한 함의를 갖습니다. LLM에게는 언어 말고 아무것도 없습니다. 텍스트가 곧 그 세계의 전부입니다.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관점에서 보면 이것은 결함이 아니라 5.6의 문자 그대로의 구현입니다. 반면 후기 비트겐슈타인은 언어를 세계에 붙들어 매는 것이 삶의 형식이라고 답하고, 거기서 LLM은 곤경에 빠집니다(5.9).

1.7명제 6 — 논리, 수학, 자연법칙, 귀납 Logic, mathematics, natural law, inductionTLP 6–6.3751

Having reduced all propositions to one form, proposition 6 sweeps through the sciences. Logic says nothing; mathematics is a method, not a body of truths; natural laws are not explanations but forms of description; and induction has a psychological foundation, not a logical one. It also contains, at 6.3751, the sentence that would destroy the whole system.

대상『논고』의 판정근거
논리의 명제항진명제 — 아무것도 말하지 않음6.1, 6.11
수학의 명제등식 — 사이비 명제(Scheinsatz)6.2, 6.21
인과율법칙이 아니라 법칙의 형식6.32
귀납논리적 근거 없음 · 심리적 근거만 있음6.31, 6.3631
자연법칙설명이 아니라 기술의 망(網)6.341, 6.371
필연성오직 논리적 필연성만 존재6.37, 6.375
6.36311

That the sun will rise tomorrow, is an hypothesis; and that means that we do not know whether it will rise.

내일 해가 뜨리라는 것은 하나의 가설이다. 그리고 그것은 우리가 해가 뜰지 모른다는 뜻이다.

6.371

At the basis of the whole modern view of the world lies the illusion that the so-called laws of nature are the explanations of natural phenomena.

근대적 세계관 전체의 밑바닥에는, 이른바 자연법칙이 자연현상의 설명이라는 착각이 놓여 있다.

6.372가 이어 붙입니다 — 「그래서 사람들은 자연법칙 앞에서 멈춰 선다. 옛사람들이 신과 운명 앞에서 그랬듯이.」 『논고』는 흔히 과학주의로 읽히지만, 정작 과학이 설명한다는 관념에는 이렇게 냉담합니다. 이 태도는 후기의 「설명이 아니라 기술(記述)」(PI §109)로 그대로 이어집니다.

6.3751 — 체계를 무너뜨린 문장The colour-exclusion problem

6.3751

For two colours, e.g., to be at one place in the visual field, is impossible, logically impossible, for it is excluded by the logical structure of colour. … The assertion that a point in the visual field has two different colours at the same time is a contradiction.

시야의 한 점에 두 색이 동시에 있는 것은 불가능하다 — 논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색의 논리적 구조가 그것을 배제하기 때문이다. … 시야의 한 점이 동시에 서로 다른 두 색을 갖는다는 주장은 모순이다.

비트겐슈타인은 이 문제를 알고 있었고, 괄호 안에 급히 처리해 두었습니다. 그러나 처리되지 않았습니다. 「이 점은 빨갛다」와 「이 점은 파랗다」는 둘 다 요소명제처럼 보이는데, 둘은 서로 배타적입니다. 그런데 1.214.211에 따르면 요소명제들은 서로 완전히 독립적이어야 하고 어떤 요소명제도 다른 요소명제와 모순될 수 없습니다. 둘 중 하나는 틀렸습니다.

1929년 그는 이 균열을 정면으로 마주하고, 결국 체계 전체를 포기합니다. 자세한 경과는 2.1에서 다룹니다.

1.86.4 이후 — 윤리, 죽음, 신비로운 것 Ethics, death, and the mysticalTLP 6.4–6.522

The last twenty remarks turn the whole technical apparatus toward the only thing Wittgenstein said the book was actually about. Value cannot be in the world, because everything in the world is contingent; ethics cannot be stated, because there are no ethical facts to picture; and the mystical is not how the world is but that it is.

6.41

The sense of the world must lie outside the world. In the world everything is as it is and happens as it does happen. In it there is no value — and if there were, it would be of no value.

세계의 뜻은 세계 바깥에 있어야 한다. 세계 안에서는 모든 것이 있는 그대로 있고 일어나는 그대로 일어난다. 그 안에는 가치가 없다 — 있다 해도 그것은 아무 가치가 없을 것이다.

6.421

It is clear that ethics cannot be expressed. Ethics is transcendental. (Ethics and aesthetics are one.)

윤리는 말로 표현될 수 없다는 것이 분명하다. 윤리는 초월적이다. (윤리와 미학은 하나이다.)

6.4311

Death is not an event of life. Death is not lived through. … he lives eternally who lives in the present.

죽음은 삶의 사건이 아니다. 죽음은 체험되지 않는다. … 현재에 사는 자는 영원히 산다.

6.44

Nicht wie die Welt ist, ist das Mystische, sondern dass sie ist.

Not how the world is, is the mystical, but that it is.

세계가 어떻게 있는가가 신비로운 것이 아니라, 세계가 있다는 것이 신비로운 것이다.

6.52

We feel that even if all possible scientific questions be answered, the problems of life have still not been touched at all. Of course there is then no question left, and just this is the answer.

가능한 모든 과학적 물음이 답해져도 삶의 문제는 조금도 건드려지지 않았다고 우리는 느낀다. 물론 그때 남은 물음은 없다. 그리고 바로 그것이 답이다.

비트겐슈타인 자신의 증언

1919년 출판업자 폰 피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논고』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으며, 「여기 쓰인 부분과, 쓰지 않은 부분. 그리고 중요한 것은 바로 두 번째 부분이다」라고 적었습니다. 윤리는 「안쪽으로부터」 한계 지어졌고, 그것이 유일하게 엄밀한 방식이라는 것입니다. 『논고』를 논리학 책으로만 읽는 것은 저자의 명시적 의도에 반합니다.

이 대목은 1929년의 「윤리에 관한 강연」에서 다시 반복됩니다. 거기서 그는 「절대적 가치」를 말하려는 모든 시도가 언어의 벽에 부딪히지만, 그 부딪힘 자체가 인간 마음의 어떤 경향에 대한 기록이며 자기는 그것을 결코 조롱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후기의 PI §119 — 「이해가 언어의 한계에 머리를 부딪쳐 얻은 혹」 — 은 같은 이미지의 반전입니다. 전기에는 그 혹이 경외의 표시였고, 후기에는 치료해야 할 증상이 됩니다.

1.9명제 7 — 사다리와 침묵 The ladder and the silenceTLP 6.53–7

The book ends by declaring itself nonsense. Anyone who understands it will recognise its propositions as senseless, having used them to climb — and must then throw the ladder away. Whether this is a coherent move, or a sleight of hand, is the single largest dispute in Wittgenstein scholarship.

6.53

The right method of philosophy would be this: To say nothing except what can be said, i.e. the propositions of natural science … and then always, when someone else wished to say something metaphysical, to demonstrate to him that he had given no meaning to certain signs in his propositions.

철학의 올바른 방법은 이럴 것이다. 말해질 수 있는 것, 곧 자연과학의 명제 외에는 아무것도 말하지 않는 것 … 그리고 누군가 형이상학적인 것을 말하려 할 때마다, 그가 자기 명제의 어떤 기호들에 아무 의미도 주지 않았음을 지적해 주는 것.

6.54

My propositions are elucidatory in this way: he who understands me finally recognizes them as senseless, when he has climbed out through them, on them, over them. (He must so to speak throw away the ladder, after he has climbed up on it.)

나의 명제들은 이런 식으로 해명한다. 나를 이해하는 사람은, 나의 명제들을 통해 — 그것들을 딛고 — 그것들을 넘어 올라갔을 때, 마침내 그것들이 무의미함을 알아본다. (말하자면 그는 사다리를 딛고 올라간 뒤에 그 사다리를 던져 버려야 한다.)

7

Wovon man nicht sprechen kann, darüber muss man schweigen.

Whereof one cannot speak, thereof one must be silent.

말할 수 없는 것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한다.

명제 1 · 2 — 세계와 사태 명제 3 · 4 — 그림과 뜻 명제 5 · 6 — 진리함수 6.4 — 윤리 · 신비로운 것 6.53 — 올바른 방법 6.54 — 사다리를 던진다 7 침묵 주석이 하나도 없는 유일한 명제 역설 — 사다리가 무의미하다면 어떻게 그것을 딛고 올라갈 수 있는가? → 표준적 독법과 단호한 독법의 갈림 (1.10절 참조)
그림 7 — 6.54의 사다리. 위로 갈수록 가로대가 흐려지는 것은 논증이 아니라 해명으로만 기능하는 명제들을 나타냅니다. 맨 위에서 사다리는 사라지고 명제 7만 남습니다.
즉시 떠오르는 반론. 『논고』의 명제들이 무의미하다면, 그것들을 「이해」하고 「딛고 올라간다」는 것은 무엇인가? 무의미한 문장열은 아무것도 이해될 것을 주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6.54는 자기를 삼키는 문장입니다. 이 반론은 램지가 이미 던졌습니다 — 「말할 수 없다면, 말할 수 없다. 그리고 휘파람으로 불 수도 없다.」 이 문제에 대한 두 가지 대응이 오늘날 『논고』 해석을 양분합니다. 다음 절에서 봅니다.

1.10『논고』의 사후 — 빈학단, 램지, 그리고 두 가지 독법 Reception, and the two readings

The book was immediately adopted by people who had misread it, criticised by the one person who had read it properly, and is still split between two incompatible interpretations of its final move.

빈학단의 오독The Vienna Circle's appropriation

슐리크·카르납·바이스만은 『논고』를 논리실증주의의 창립 문서로 읽었습니다. 「형이상학의 명제는 무의미하다」와 「명제의 뜻은 그 검증 방법이다」를 결합해 검증원리를 세웠습니다. 그런데 두 번째 주장은 『논고』에 없습니다. 그리고 6.4 이후의 윤리·신비로운 것에 관한 명제들은 빈학단이 원하지 않았던 부분이라 사실상 무시되었습니다.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학단의 모임에 몇 차례 참석했지만 회원이 된 적이 없고, 그들이 자기 책을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고 불편해했습니다. 그가 슐리크 일행 앞에서 철학 토론 대신 등을 돌리고 앉아 타고르의 시를 읽은 일화는 이 관계를 잘 요약합니다.

램지의 비판Ramsey

프랭크 램지는 열아홉에 『논고』를 영역했고, 1923년과 1924년 푸흐베르크로 그를 찾아가 함께 읽었습니다. 램지의 지적 — 동일성 기호의 취급, N 연산자의 무한 적용 문제, 그리고 「말할 수 없는 것」의 지위 — 은 비트겐슈타인이 자기 체계를 다시 들여다보게 만든 직접적 계기였습니다. 『탐구』 서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램지와의 대화를 감사와 함께 명시합니다. 램지는 1930년 스물여섯에 죽었습니다.

두 가지 독법Standard vs. resolute

표준적 독법

중요한 무의미

  • 『논고』의 명제들은 무의미하지만 말할 수 없는 진리를 가리킨다.
  • 말할 수 없는 것이 있고, 그것은 보여진다.
  • 6.54는 「이제 도구를 내려놓으라」는 뜻이지 「내가 한 말은 전부 헛소리였다」가 아니다.
  • 대표: 앤스컴, 해커, 기치, 그리고 사실상 20세기 전체의 표준.
단호한 독법

그냥 무의미

  • 무의미는 무의미다. 「깊은 무의미」 같은 것은 없다.
  • 「말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는 것 자체가 사다리의 마지막 단이며 그것도 버려야 한다.
  • 책의 목적은 독자가 스스로를 형이상학의 유혹에서 벗어나게 하는 치료다.
  • 대표: 코라 다이아몬드, 제임스 코넌트. 『새로운 비트겐슈타인』(2000).

단호한 독법의 큰 장점은 전기와 후기의 연속성이 보인다는 것입니다. 『탐구』의 「치료로서의 철학」이 이미 『논고』에 있었다는 것이니까요. 큰 약점은 6.4 이후의 명제들 — 「신비로운 것은 스스로를 보인다」(6.522) — 을 진지하게 읽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폰 피커에게 「중요한 것은 쓰지 않은 부분」이라고 한 편지도 단호한 독법에는 불리합니다.

이 문서의 입장. 본문은 대체로 표준적 독법에 가깝게 서술했습니다. 초심자가 『논고』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 그쪽이 명료하기 때문이지, 그것이 옳다고 판단해서가 아닙니다. 이 논쟁은 「주요 논쟁」에서 다시 다룹니다. 해석 갈림
3부

전환기 — 체계가 무너지는 7년

The Transition · 1929–1936

1929년에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사람은 자기 책에 작은 수리가 필요하다고 믿었습니다. 1936년에 노르웨이 오두막에 앉은 사람은 그 책의 전제가 하나도 남김없이 틀렸다고 판단하고 있었습니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있었는가 — 이 부는 두 철학 사이의 다리이자, 사실은 무너지는 다리의 기록입니다.

2.1색채 배제 문제 — 체계를 무너뜨린 균열 The colour-exclusion problemTLP 6.3751 · PR §76–§83

The Tractatus required elementary propositions to be logically independent: no elementary proposition can contradict another. But "this point is red" and "this point is blue" are as elementary as anything gets, and they exclude each other. Once Wittgenstein accepted that elementary propositions come in systems, the truth-functional architecture of the whole book had nowhere to stand.

문제의 정확한 형태Stating it precisely

『논고』는 두 가지를 동시에 요구합니다.

요구출처내용
독립성1.21 · 4.211요소명제는 서로 독립적이며, 어떤 요소명제도 다른 요소명제와 모순될 수 없다.
완전 분석3.25 · 4.221모든 명제는 요소명제들의 진리함수로 유일하게 분석된다.
모순의 원천4.46 · 6.375불가능성은 오직 논리적 불가능성뿐이다.

이제 「시야의 이 점 P는 빨갛다」(R)와 「P는 파랗다」(B)를 봅시다. R ∧ B는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R과 B가 요소명제라면 독립성 요구에 어긋납니다. 요소명제가 아니라면 무엇으로 분석되어야 하는데, 「빨강」을 더 단순한 것들의 진리함수로 쪼개는 분석은 아무도 제시하지 못했습니다. 『논고』는 6.3751에서 이것을 「색의 논리적 구조가 배제한다」고 말하며 넘어갔습니다. 그러나 그 「색의 논리적 구조」야말로 『논고』가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 논리적 구조는 요소명제들 사이가 아니라 명제의 형식에만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논고』가 요구하는 것 요소명제 p, q는 완전히 독립적 가능가능 가능가능 p 참 p 거짓 q 참 q 거짓 네 칸 모두 열려 있어야 한다 (1.21) 실제 색채의 경우 R = "P는 빨갛다" · B = "P는 파랗다" 가능 가능가능 R 참 R 거짓 B 참 B 거짓 한 칸이 막혀 있다 — 그러나 논리가 막은 것이 아니다 결론 — 요소명제들은 서로 독립적인 원자가 아니라 체계(Satzsystem)를 이룬다. 색은 색의 체계 안에서, 길이는 길이의 체계 안에서만 의미를 갖는다. 진리함수적 조립은 그 위에서만 작동한다.
그림 8 — 색채 배제 문제. 논리적 공간에 하나의 칸이 막혀 있는데, 그것을 막은 것은 논리가 아닙니다. 이 구멍 하나가 『논고』의 원자론 · 독립성 · 진리함수적 합성 · 명제의 일반 형식을 연쇄적으로 무너뜨립니다.

연쇄 붕괴The chain reaction

무너진 것이유남은 결과
요소명제의 독립성색·길이·음높이 등 모든 정도(degree) 개념이 반례폐기
논리적 원자론단순 대상으로의 분석이 끝나는 지점을 제시할 수 없음폐기
진리함수적 합성만으로 충분함체계 내부의 배제 관계는 진리함수로 표현 불가폐기
명제의 일반 형식 [p̄, ξ̄, N(ξ̄)]모든 명제를 담는 하나의 형식이 성립하지 않음폐기
말함 / 보임의 구별직접적 반례는 없으나 지탱하던 형식 개념이 사라짐사실상 소멸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독립적 논제유지

2.2「논리적 형식에 관한 몇 가지 소견」과 그 철회 Some Remarks on Logical Form, 1929

His only published philosophical paper was an attempt to patch the hole, and he abandoned it before he had even delivered it — the one time in his life he tried to publish a repair rather than a rebuilding.

1929년 7월, 노팅엄에서 열린 아리스토텔레스 학회·마인드 학회 합동 학술대회에 제출한 논문입니다. 거기서 그는 색·길이 같은 정도 개념을 담은 명제가 사실은 수(數)를 포함하며, 배제 관계는 논리가 아니라 구문론(syntax)이 처리해야 한다고 제안했습니다. 요컨대 「진리표에 애초에 그려서는 안 되는 줄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수리는 치명적입니다. 진리표에 그려서는 안 되는 줄이 있다면, 어떤 줄이 그려도 되는지를 미리 알아야 하고, 그 앎은 요소명제들 이전에 있어야 합니다. 즉 요소명제는 더 이상 독립된 원자가 아니라 체계의 성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인정되는 순간 『논고』의 건축은 지지대를 잃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를 곧바로 알아챘습니다. 학회 당일 그는 이 논문을 읽지 않고 수학에서의 무한에 관해 이야기했고, 이후 이 논문을 무가치하다고 여러 차례 말했습니다. 이 실패가 그를 「수리」에서 「재건」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2.3빈학단, 검증주의, 그리고 스라파의 손짓 The Circle, verificationism, and Sraffa's gesture

For a couple of years around 1930 he did hold something close to verificationism — the Circle was not simply making it up — and then dropped it. The decisive push away from the whole picture came not from a philosopher but from an Italian economist making a Neapolitan hand gesture.

잠시 지나간 검증주의The brief verificationist phase

1929–31년의 기록(바이스만이 받아 적은 『비트겐슈타인과 빈학단』, 그리고 『철학적 소견』)에는 「명제의 뜻은 그것의 검증 방법이다」에 가까운 진술이 실제로 나옵니다. 빈학단이 그를 검증주의의 아버지로 삼은 것은 완전한 날조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는 곧 이 원리 자체가 또 하나의 「의미의 본질」 이론임을 알아채고 버립니다. 후기의 관점에서 검증은 어떤 언어게임에서는 의미를 규정하지만 다른 게임에서는 그렇지 않습니다. 「아프다」의 뜻은 그것의 검증 방법이 아닙니다.

스라파Sraffa

『탐구』 서문에서 비트겐슈타인은 이 책의 「가장 중요한 착상들」이 케임브리지의 경제학자 피에로 스라파와의 수년에 걸친 비판적 대화에 빚졌다고 밝힙니다. 전기 작가들이 전하는 유명한 장면은 이렇습니다.

전해지는 일화

비트겐슈타인이 명제와 그것이 기술하는 것은 반드시 같은 「논리적 형식」을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하자, 스라파가 손가락 끝으로 턱 아래를 쓸어 올리는 나폴리식 손짓 — 「그래서 어쨌다는 거야?」라는 뜻의 — 을 해 보이고 물었습니다. 「이것의 논리적 형식은 뭔가?」

전언의 형태는 판본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확실한 것은 비트겐슈타인 자신이 스라파와의 대화가 「가지가 모두 잘려 나간 나무」가 된 기분이었다고 말했다는 점입니다.

이 손짓이 왜 결정적인가. 손짓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러나 대상을 가리키지도, 사태를 그리지도 않습니다. 손짓의 의미는 그것이 나폴리의 어떤 삶 속에서 하는 일입니다. 『논고』의 그림 이론은 이 한 사례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여기서 「의미 = 언어 활동 속에서의 역할」이라는 후기의 착상이 나옵니다.

2.4『청색책』과 『갈색책』 — 언어게임의 등장 The Blue and Brown Books · 1933–1935BB

Dictated to his students and circulated in typescript, these are the first place the later philosophy speaks in its own voice. Four ideas arrive here that the Investigations will build on: the language-game, the craving for generality, family resemblance, and the distinction between criteria and symptoms.

『청색책』은 1933–34년 강의에서 구술한 것이고, 『갈색책』은 1934–35년에 스키너와 앰브로즈에게 구술한 것입니다. 두 권 다 사후 출간(1958)이지만 타자본으로 널리 돌아 「푸른 표지의 책」으로 불렸습니다.

① 언어게임Language-game

『청색책』은 「낱말의 의미란 무엇인가?」로 시작해, 이 물음이 잘못된 종류의 답을 요구한다고 진단합니다. 대신 그는 아주 단순한 언어들을 상상해 보라고 제안합니다 — 아이가 처음 배우는 언어, 네 개의 낱말만으로 돌아가는 언어. 이 원시적 언어들을 그는 언어게임이라 부릅니다. 『갈색책』은 아예 번호가 매겨진 언어게임 73개의 연쇄로 되어 있습니다. 이것이 『탐구』 앞부분의 초고입니다.

② 일반성에 대한 갈망The craving for generality

『청색책』의 진단 중 가장 날카로운 대목입니다. 철학자는 「게임」이라는 낱말이 있으면 모든 게임에 공통된 무엇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일반성에 대한 갈망개별 사례에 대한 경멸이라 부르고, 과학의 방법을 철학에 잘못 들여온 결과로 진단합니다. 「철학자들은 늘 과학의 방법을 눈앞에 두고, 과학이 하는 방식으로 물음에 답하려는 참을 수 없는 유혹을 받는다. 이 경향이야말로 형이상학의 진짜 원천이며, 철학자를 완전한 어둠으로 이끈다」는 취지의 진술이 여기 있습니다.

③ 가족 유사성의 첫 등장Family likeness

「게임」이나 「수」 같은 낱말이 서로 겹치는 유사성의 가족을 지칭한다는 착상이 여기서 처음 나옵니다. 『탐구』 §66–§67에서 완성될 논변의 초안입니다(3.3).

④ 기준과 징후Criteria and symptoms

『청색책』의 이 구별은 후기 철학 전체의 도구가 됩니다. 기준(criterion)은 어떤 개념이 적용되는지를 문법적으로 정하는 것이고, 징후(symptom)는 경험적으로 그것과 상관된 것입니다. 「인후염」의 기준이 특정 세균의 검출이라면, 열은 징후입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이 기준인지가 발견되는 사실이 아니라 우리 언어의 규약이라는 점입니다. 「이 사람이 아프다」의 기준은 무엇인가 — 이 물음이 사적 언어 논변의 뼈대가 됩니다.

버려진 초고 하나. 1936년 그는 『갈색책』을 독일어로 옮겨 다듬으려 했습니다(「어떤 철학적 고찰」). 140쪽쯤 쓴 뒤 원고 여백에 「이 모든 시도는 무가치하다(Dieser ganze Versuch … ist nichts wert)」는 취지의 말을 적고 중단합니다. 그리고 노르웨이에서 『탐구』를 처음부터 새로 시작합니다. 지금 우리가 읽는 §1은 그 새 출발의 첫 문장입니다.

2.5프레이저 비판 — 설명에서 기술로 Remarks on Frazer's Golden Bough · 19311931 / 1967

A short set of notes attacking an anthropologist turns out to contain the methodological core of the later philosophy: stop explaining, start arranging. The concept of a "perspicuous representation" — later called of fundamental significance in the Investigations — is first articulated here.

제임스 프레이저의 『황금가지』는 주술과 종교 의례를 잘못된 과학으로 설명합니다. 비를 부르는 춤은 춤이 비를 오게 한다는 그릇된 인과적 믿음의 결과라는 것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강하게 거부합니다.

그의 반론은 세 갈래입니다.

여기서 나온 방법 개념

일목요연한 조망(übersichtliche Darstellung) — 사실들을 서로 연결이 한눈에 보이도록 배열하는 것. 「중간 고리(Zwischenglieder)」를 찾아 넣어 하나의 사례에서 다른 사례로 자연스럽게 옮겨 갈 수 있게 만드는 것. 이것이 설명(explanation)을 대신합니다. 『탐구』 §122가 이 개념을 「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것」이라고 못 박습니다.

이 전환은 언어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의미란 무엇인가」에 대한 이론을 세우려는 시도를 그만두고, 낱말이 실제로 쓰이는 사례들을 늘어놓고 그 사이의 연결을 보이는 것 — 『탐구』가 하는 일이 정확히 이것입니다. 그리고 이 방법론적 결단이, 6부에서 볼 「이론 없이 사용만으로」라는 LLM의 작동 원리와 뜻밖의 공명을 이룹니다.

1921

전기 — 『논고』

  • 언어의 본질이 있다 — 그림
  • 의미는 대상과의 대응
  • 분석은 단순자에서 끝난다
  • 일상 언어는 사고를 위장한다
  • 철학의 목표: 논리적 형식의 해명
  • 모든 명제는 하나의 형식을 공유
  • 이상 언어가 기준
1953

후기 — 『탐구』

  • 언어의 본질은 없다 — 가족 유사성
  • 의미는 언어 안에서의 쓰임
  • 단순함은 맥락 상대적이다
  • 일상 언어는 있는 그대로 완전하다 (§98)
  • 철학의 목표: 혼란의 해소
  • 수많은 언어게임의 느슨한 그물
  • 실제 쓰임이 기준
4부

『철학적 탐구』 — 본질 없는 언어

Philosophical Investigations · written 1936–1949, published 1953

693개의 절. 논증도 결론도 없이 사례와 물음과 대화가 이어집니다. 독자를 설득하려 하지 않고 보게 만들려 합니다. 이 부에서는 절 묶음별로 무엇이 논의되는지, 그리고 각 묶음이 『논고』의 어떤 전제를 무너뜨리는지를 따라갑니다. 저작권상 원문을 옮기지 않고 절 번호와 함께 논지를 풀어 씁니다.

3.0앨범이라는 형식 The albumPI 서문

The preface explains why the book has no argument. He tried for sixteen years to weld the remarks into a linear whole and failed — because, he concluded, the subject itself forces you to travel over the same territory again and again from different directions. So the book is a set of sketches of a landscape, an album.

비트겐슈타인은 서문에서 자기가 실패했다고 말합니다. 생각들을 하나의 자연스러운 순서로, 끊김 없이 이어지도록 용접하려 했지만 되지 않았습니다. 이유는 그가 곧 깨달은 대로 사태 자체에 있습니다 — 이 탐구는 넓은 사고의 영역을 온갖 방향에서 가로질러야 하고, 같은 지점을 여러 번 다른 각도에서 지나야 합니다. 그래서 남은 것은 여행 중 그린 풍경 스케치의 묶음, 곧 앨범입니다.

읽는 법

『탐구』에는 결론이 없습니다. 요약할 수 있는 「비트겐슈타인의 이론」을 찾으려 하면 반드시 왜곡됩니다. 각 절은 대개 (1) 우리가 자연스럽게 하고 싶어지는 말, (2) 그 말을 실제 사례에 대 보기, (3) 그러면 어떻게 되는지 — 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자주 등장하는 따옴표 없는 대화 상대는 「우리 자신 안의 철학자」이고, 비트겐슈타인은 그와 논쟁하는 것이 아니라 그가 말을 잃게 만듭니다.

서문에는 또 이 책이 『논고』와 함께 읽혀야 한다는 언급이 있습니다. 그는 옛 책의 「중대한 오류들」을 배경으로 두어야 새 생각이 올바른 빛 속에 놓인다고 썼습니다. 즉 『탐구』는 독립된 저작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 대한 반박서로 설계되어 있습니다.

3.1§1–20 —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림과 건축가의 언어 Augustine's picture and the buildersPI §1–§20

The book opens by quoting Augustine on how he learned to speak, and then treats that lovely passage as a specimen of a disease: the picture of language in which every word is a name and every sentence a combination of names. The antidote is a language so small you can hold it in your hand — four words, two workmen, a building site.

§1 —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림The Augustinian picture

『탐구』는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1권 8장의 인용으로 시작합니다. 어른들이 어떤 사물을 부르며 그쪽으로 몸을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그 소리가 그 사물을 가리킨다는 것을 알아차렸다는 회상입니다. 아름다운 구절이고, 그래서 위험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하나의 언어관으로 추출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적 그림의 세 전제귀결『논고』에서의 대응
낱말은 대상의 이름이다모든 낱말에는 대응하는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3.203
문장은 이름들의 결합이다문장의 뜻은 부분에서 조립된다3.14, 4.024
학습은 지시적 정의로 이루어진다가리키기만 하면 의미가 전달된다3.263

§1의 유명한 반례가 곧바로 나옵니다. 사과 다섯 개를 사 오라는 쪽지를 상점 주인에게 건네는 장면 — 주인은 「사과」 서랍을 열고, 「빨강」이라는 낱말에 대해서는 색 견본표를 찾고, 「다섯」에 대해서는 수를 셉니다. 「다섯」에 대응하는 대상은 어디에도 없습니다. 그런데도 낱말은 완벽하게 작동합니다. 낱말이 무엇을 가리키는가가 아니라 낱말로 무엇을 하는가가 문제입니다.

§2 — 건축가와 조수The builders' language

§2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서술이 참인 언어를 하나 만들어 보입니다. 건축가 A와 조수 B가 있고, 언어에는 네 낱말밖에 없습니다 — 블록 · 기둥 · 판석 · 들보. A가 외치면 B가 그 부재를 가져옵니다. 그게 전부입니다.

이 장면의 힘은 그 단순함에 있습니다. 여기서 「블록」의 의미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떤 정신적 상(像)이 아니고, 낱말이 가리키는 추상적 대상도 아닙니다. 그것은 이 외침에 저 행동이 따른다는 사실 전체입니다. §7에서 그는 이 「언어와 그 언어가 얽힌 활동들의 전체」를 언어게임이라 부릅니다.

§5–§6은 이 언어가 어떻게 가르쳐지는지를 봅니다. 지시적 설명이 아니라 훈련(Abrichtung)입니다. 이 독일어 낱말은 동물을 조련할 때 쓰는 말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 단어를 고른 것은 의도적입니다 — 아이는 뜻을 이해해서 낱말을 익히는 것이 아니라, 소리와 반응이 짝지어지도록 길들여집니다. 이해는 그 뒤에 옵니다. (이 대목이 5.5에서 기계학습의 「training」과 정면으로 만납니다.)

§11–§20 — 도구상자와 겉모습의 획일성The toolbox

§11: 낱말을 도구상자 속의 도구들에 비유합니다 — 망치, 집게, 톱, 자, 아교통, 못. 도구들의 기능은 서로 다릅니다. 그런데 낱말들은 인쇄된 모습이나 소리에서 다 비슷해 보입니다. 이 겉모습의 획일성이 우리를 속입니다(§11 끝). §12: 기관차 운전실의 손잡이들 — 다 손잡이처럼 생겼지만 하나는 크랭크, 하나는 스위치, 하나는 브레이크 레버입니다.

§19에 이 부의 첫 번째 결정적 문장이 나옵니다. 하나의 언어를 상상한다는 것은 하나의 삶의 형식(Lebensform)을 상상한다는 뜻이라는 것. 건축가의 언어는 건축이라는 활동 없이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낱말들은 활동에 박혀 있고, 활동에서 떼어내면 의미도 사라집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그림 (§1) "블록""기둥" "판석""들보" 낱말 → 대상 의미 = 화살표가 닿는 곳 "다섯"의 화살표는 어디로 가는가? 언어게임 (§2, §7, §19) A가 외친다 B가 가져온다 건물이 자란다 다음 부재가 필요해진다 "판석!" 의미 = 이 고리 전체에서 낱말이 하는 일 고리 밖으로 꺼내면 "판석"은 아무 의미도 갖지 않는다 §19 — 하나의 언어를 상상함은 하나의 삶의 형식을 상상함
그림 9 — 두 언어관. 왼쪽에서 의미는 낱말 바깥의 대상에 있고, 오른쪽에서 의미는 낱말이 들어 있는 활동의 고리에 있습니다. 오른쪽 그림에는 낱말에서 사물로 직접 가는 화살표가 없다는 점이 핵심입니다.
시뮬레이션 3 · 건축가의 언어게임 — 훈련되기 전과 후

§2의 네 낱말짜리 언어입니다. 낱말을 외치면 조수가 반응합니다. 훈련 횟수를 0으로 두고 외쳐 보십시오 — 조수는 아무 낱말에나 아무거나 가져옵니다. 훈련을 올리면 반응이 맞아 들어갑니다. 여기서 「이해」는 어디에 있습니까? 조수의 머릿속에 「판석」의 상(像)이 생긴 것이 아니라, 외침과 행동의 짝이 굳어진 것뿐입니다. 마지막으로 낯선 낱말을 던져 보십시오. 이것이 §5–§6의 Abrichtung입니다.

3.2§21–64 — 언어게임의 다수성, 삶의 형식, 그리고 §43 Multiplicity, forms of life, and the use theoryPI §21–§64

§23 lists what people actually do with sentences — ordering, describing, reporting, speculating, joking, thanking, cursing, praying — and observes that no theory of "the proposition" survives contact with that list. §43 gives the formula the whole later philosophy is remembered by, with a qualification almost everyone drops.

§23 — 언어게임의 목록The list

§23에서 그는 문장으로 우리가 하는 일들을 죽 늘어놓습니다 — 명령하기, 사물을 기술하기, 사건을 보고하기, 추측하기, 가설을 세우고 검증하기, 실험 결과를 표와 도표로 제시하기, 이야기를 지어내고 읽기, 연극하기, 돌림노래 부르기, 수수께끼 내기, 농담하기, 산수 문제 풀기, 번역하기, 부탁·감사·저주·인사·기도하기.

그리고 한마디 덧붙입니다 — 이 다양성을 논리학자들이 언어의 구조에 대해 말한 것과 비교해 보라고. 『논고』를 겨눈 문장입니다. 「명제의 일반 형식」은 이 목록의 첫 항목 몇 개에나 겨우 들어맞습니다. 기도의 진리조건은 무엇입니까? 인사의 그림 이론은요?

§23은 또 언어게임이 생겨나고 사라진다고 말합니다. 언어는 완성된 계산 체계가 아니라 역사를 가진 활동들의 무리입니다.

§43 — 가장 많이 인용되고 가장 자주 잘못 인용되는 문장Meaning is use

§43의 정확한 형태

「‘의미’라는 낱말을 사용하는 사례들의 큰 부류에 대해서 — 전부는 아니지만 — 이 낱말은 이렇게 설명될 수 있다.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의 그 쓰임이다.」

두 개의 단서를 눈여겨보십시오. ① 「큰 부류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지만」 — 이것은 의미의 정의가 아닙니다. 본질을 찾지 말라고 했던 사람이 여기서 본질을 제시할 리 없습니다. ② 「언어에서의(in der Sprache)」 — 아무 쓰임이나가 아니라 언어라는 제도 안에서의 쓰임입니다. §43의 뒤 문장은 이름의 의미가 때로는 그 담지자를 가리켜 설명된다고 덧붙입니다. 즉 지시적 설명이 틀렸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 하나로 전부를 설명하려는 것이 틀렸다는 것입니다.

이 단서가 왜 중요한지는 5.3에서 결정적으로 드러납니다. 「의미 = 사용」을 정의로 읽으면 「LLM은 사용만으로 훈련되었으니 의미를 갖는다」가 곧바로 따라 나옵니다. 단서를 붙여 읽으면 그 추론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46–§64 — 단순자에 대한 파괴Against simples

§46은 『테아이테토스』의 소크라테스가 말한 「원초적 요소」를 인용하고, §47에서 결정적 물음을 던집니다 — 「이 의자의 단순한 구성 요소들은 무엇인가?」

답이 없습니다. 나무 조각들? 분자들? 색깔 조각들? 답은 무엇을 위해 묻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단순하다」와 「복합적이다」는 절대적 술어가 아니라 특정 언어게임 안에서만 의미를 갖습니다. 체스판은 흰 칸과 검은 칸으로 복합적입니까, 아니면 하나의 단순한 판입니까? 물음이 불완전합니다.

이것으로 『논고』 2.02(「대상은 단순하다」)의 근거가 사라집니다. 『논고』는 분석이 끝나야 하므로 단순자가 있어야 한다고 논증했습니다. 『탐구』의 대답은 이렇습니다 — 분석은 필요한 만큼 진행되고, 그 「필요한 만큼」은 게임이 정합니다. §60–§64가 이를 상세히 밀어붙입니다: 「빗자루가 구석에 있다」를 「자루가 구석에 있고 솔이 구석에 있고 둘이 꽂혀 있다」로 바꾸면 더 정확해지는가? 아닙니다. 그저 이상해질 뿐입니다.

3.3§65–88 — 가족 유사성과 흐릿한 경계 Family resemblance and blurred edgesPI §65–§88

Asked what all language-games have in common, he refuses to answer — and instead asks the reader to look at games. Board games, card games, ball games, Olympic games. You will find a network of overlapping similarities and no single thread running through all of them. A concept can be perfectly usable and have no boundary at all.

§65–§67 — 보라, 생각하지 말고Don't think, look

§65에서 대화 상대가 항의합니다 — 「당신은 언어게임 얘기만 하고 정작 언어게임의 본질, 곧 언어의 본질이 무엇인지는 말하지 않는군요.」 비트겐슈타인은 그 요구를 정면으로 거절합니다. 그리고 §66이 그 유명한 명령을 내놓습니다 — 「생각하지 말고, 보라!」

게임들을 봅시다. 판 게임, 카드 게임, 공 게임, 올림픽 경기, 아이의 공 튀기기. 승패가 공통점입니까? 혼자 벽에 공을 튀기는 놀이에는 승패가 없습니다. 경쟁? 인내심 카드놀이(솔리테어)에는 상대가 없습니다. 규칙? 아이들이 즉흥으로 만들어 노는 놀이는요? 오락? 프로 스포츠는 생계입니다.

§66의 결론은 「공통점을 아직 못 찾았다」가 아니라 「공통점은 없고, 대신 유사성들의 복잡한 그물이 보인다」입니다. §67이 이것에 이름을 붙입니다 — 가족 유사성. 한 가족의 구성원들은 체격 · 이목구비 · 눈 색깔 · 걸음걸이 · 기질에서 겹치고 교차하며 닮습니다. 모든 구성원이 공유하는 단 하나의 특징은 없습니다.

§67의 두 번째 비유가 더 정확합니다 — 실(絲). 실의 강도는 어떤 한 가닥이 실 전체를 관통하기 때문이 아니라, 수많은 짧은 가닥들이 서로 겹치기 때문에 생깁니다.

시뮬레이션 4 · 가족 유사성 — 「게임」의 본질 찾기

아래 열두 가지가 우리가 「게임」이라 부르는 것들입니다. 어떤 특징을 필수 조건으로 지정해 보십시오 — 그 특징이 없는 것은 게임 목록에서 탈락합니다. 어떤 조합을 고르든, 필수 조건을 하나라도 걸면 반드시 진짜 게임이 잘려 나갑니다. 아래 그래프는 공유 특징 수가 임계값 이상인 것끼리 연결한 것입니다. 임계값을 올리면 그물이 끊어지지만, 그래도 모두를 잇는 한 가닥은 끝내 나타나지 않습니다.

§68–§77 — 흐릿한 개념은 개념이 아닌가Blurred concepts

대화 상대가 다시 항의합니다 — 「그러면 ‘게임’이라는 개념은 경계가 없는 개념 아닙니까? 그런 건 개념도 아니죠.」 §69–§71의 대답이 이 절의 핵심입니다.

이 논변이 겨누는 것

정의(定義)에 의한 개념 이해라는 이천 년의 프로그램 전체입니다. 플라톤의 「경건이란 무엇인가」부터 프레게의 「개념은 날카로운 경계를 가져야 한다」까지, 철학은 필요충분조건을 찾는 일이었습니다. §66–§71은 그 프로그램이 대부분의 실제 개념에 대해 실행 불가능하며, 실행할 필요도 없다고 말합니다. 심리학에서는 로슈의 원형 이론(1970년대)이 이것을 실험으로 확인했고, 인공지능에서는 이 프로그램의 붕괴가 온톨로지 기반 시스템의 실패로 나타납니다(5.4).

3.4§89–133 — 철학이란 무엇인가 Philosophy as therapyPI §89–§133

The most self-conscious stretch of the book. Philosophical problems are not problems of fact or of logic but symptoms — of language idling, of a picture we cannot see because we are looking through it. The aim is not a theory but relief: to stop, when one wants to.

핵심한 줄로
§109철학은 설명하지 않고 기술한다새로운 사실을 발견하는 일이 아니다; 이미 다 눈앞에 있다
§109언어에 의한 지성의 홀림과 싸우는 것철학 = 언어가 우리에게 거는 마법 풀기
§115「하나의 그림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다」그림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 언어 안에 그것이 되풀이되었으므로
§116낱말을 형이상학적 사용에서 일상적 사용으로 되돌리기「안다」「존재」「대상」이 원래 어떻게 쓰이는지 보라
§118우리가 부수는 것은 모래성뿐중요한 것은 아무것도 파괴되지 않는다
§119철학의 성과 = 언어의 벽에 머리를 부딪쳐 생긴 그 혹이 성과의 가치를 알게 한다
§122일목요연한 조망의 결여가 근본 문제「우리에게 근본적으로 중요한」 개념 — 프레이저 비판에서 온 것
§123철학적 문제의 형식: 「나는 길을 모르겠다」지식의 결여가 아니라 방향 감각의 상실
§124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언어의 실제 사용에 간섭하지 않는다
§127철학자의 일 = 특정 목적을 위한 상기(想起)의 수집새 정보가 아니라 이미 아는 것의 재배열
§128철학에서 테제를 세우려 한다면 논쟁이 불가능할 것모두가 동의할 것들만 말하므로
§132질서를 세우되 유일한 질서가 아니라 목적에 따른 질서여러 질서 가운데 하나
§133진짜 발견 = 원할 때 철학을 멈출 수 있게 하는 것하나의 방법이 아니라 여러 치료법

§133의 마지막 문장이 후기 철학의 자기 규정입니다 — 「하나의 철학적 방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방법들이 있다. 말하자면 여러 치료법들이.」 이것이 「치료로서의 철학」이라는 표현의 출처입니다. §109와 §255(「철학자가 물음을 다루는 방식은 질병을 다루는 방식과 같다」)가 이 은유를 완성합니다.

이 대목의 위험. 「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124)는 종종 보수주의로 읽혔습니다. 실제로 이 문장은 「기존 언어 관행을 비판하지 말라」는 뜻으로 인용되곤 했고, 이에 대한 강한 비판이 있습니다(마르쿠제, 겔너, 그리고 페미니즘 철학의 일부). 비트겐슈타인의 의도는 좁습니다 — 철학은 언어를 개혁하는 학문이 아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좁은 주장이 넓은 정치적 결론으로 미끄러지기 쉽다는 지적은 정당합니다. 논쟁 중

3.5§134–184 — 이해, 읽기, 그리고 「갑자기 알았다」 Understanding, reading, the flashPI §134–§184

Before the rule-following argument he clears the ground by attacking the idea that understanding is a mental state. When the pupil suddenly says "now I've got it!", something happens — but that something is not what the understanding consists in.

§138–§155가 다루는 것은 이런 경험입니다. 누가 수열 1, 5, 11, 19, 29 …를 보여 줍니다. 한참 헤매다가 갑자기 알아차립니다.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난 것입니까?

「그 순간 이해가 나에게 왔다」는 말은 자연스럽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해가 그 순간에 일어난 어떤 정신적 사건 혹은 상태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반론(§146–§155):

§156–§178의 「읽기」 논의가 같은 구조를 더 정교하게 보여 줍니다. 「읽는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글자를 소리로 옮기는 특수한 정신 과정이 있는 것 같지만, 숙달된 독자에게 그런 과정은 관찰되지 않습니다. 그저 읽습니다. 그리고 글자를 외워서 말하는 사람과 실제로 읽는 사람 사이에는 어느 한 순간을 집어 「여기서부터 읽기 시작했다」고 할 지점이 없습니다(§157).

여기서 얻어지는 도구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580). 이 문장은 §138–§184에서 조립된 결론을 요약합니다. 「이해한다」·「읽는다」·「의도한다」·「의미한다」가 정신 안의 무언가라면, 그 무언가가 맞았는지 틀렸는지 판정할 방법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판정은 언제나 바깥에서, 이어지는 행동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도구가 §185의 규칙 따르기와 §258의 사적 언어 논변을 동시에 겨눕니다. 그리고 5.7에서 LLM의 자기 보고에 그대로 적용됩니다.

3.6§185–242 — 규칙 따르기의 역설 The rule-following paradoxPI §185–§242

The single most discussed passage in twentieth-century philosophy. A pupil who has been taught "add 2" writes 998, 1000, 1004, 1008 — and insists he is doing exactly what he was taught. You cannot prove him wrong by pointing at the rule, because every finite set of examples is compatible with infinitely many rules. What settles it is not a fact about the rule but a practice.

§185 — 1000 다음에 1004The deviant pupil

「+2」 수열을 배운 학생이 1000까지는 완벽하게 씁니다. 그런데 그다음에 1004, 1008, 1012라고 씁니다. 우리가 「틀렸다」고 하자 학생은 어리둥절해합니다 — 「저는 전과 똑같이 하고 있는데요.」

여기서 학생이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는 점이 중요합니다. 그는 「+2」를 「1000까지는 2씩, 그 뒤에는 4씩」이라는 규칙으로 이해했습니다. 그리고 그가 본 모든 사례가 그 이해와 완벽하게 일치합니다. 우리가 가르쳐 준 것 중 어떤 것도 두 해석을 구별해 주지 못했습니다.

§198–§202 — 역설과 그 해소The paradox and its dissolution

§201이 역설을 명시적으로 진술합니다 — 어떤 행위 방식도 규칙에 의해 결정될 수 없다. 왜냐하면 어떤 행위 방식이든 그 규칙과 일치하도록 해석될 수 있으므로. 그리고 일치하도록 해석될 수 있다면 어긋나도록 해석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일치도 어긋남도 없어집니다.

흔한 대응은 「규칙을 더 명확히 해석해 주면 된다」입니다. §198이 이를 막습니다 — 해석은 또 하나의 기호일 뿐이고, 그 해석도 다시 해석을 필요로 합니다. 무한 후퇴입니다.

§201의 후반이 출구를 냅니다 — 해석이 아닌 방식으로 규칙을 파악하는 길이 있다. 그것은 규칙을 실제로 따르는 것, 그리고 거스르는 것에서 사례마다 드러납니다.

§202 — 이 부의 결론

규칙을 따르는 것은 하나의 실천(Praxis)이다. 그리고 규칙을 따른다고 생각하는 것은 규칙을 따르는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규칙을 사적으로 따르는 것은 불가능하다.

마지막 문장이 곧바로 §243의 사적 언어 논변으로 이어집니다. §202가 없으면 §258은 성립하지 않습니다. 두 논변은 하나입니다.

보조 문장 둘이 이 결론을 지탱합니다. §217 — 정당화를 다 소진하면 나는 단단한 바닥에 이르고 삽이 튕겨 나온다. 그때 말할 수 있는 것은 「나는 그냥 이렇게 한다」뿐이다. §219 — 규칙을 따를 때 나는 선택하지 않는다. 맹목적으로 따른다.

그리고 §241–§242가 이 「맹목적 따름」이 어디에 뿌리내리는지 말합니다. 사람들은 자기가 쓰는 언어에서 일치합니다. 그것은 의견의 일치가 아니라 삶의 형식의 일치입니다. §242: 언어에 의한 소통에는 정의(定義)의 일치뿐 아니라 판단의 일치가 필요합니다.

시뮬레이션 5 · 규칙 따르기 — 유한한 사례는 규칙을 정하지 못한다

훈련 범위를 정하면, 그 범위 안에서 「+2」와 완벽하게 일치하는 규칙 후보들이 아래에 표시됩니다. 범위를 아무리 넓혀도 후보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 범위 밖에서 갈라지는 규칙을 언제든 새로 만들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프에서 후보들이 훈련 범위 끝에서 부채처럼 갈라지는 것을 보십시오. 「공동체 교정」을 누르면 사례가 하나 추가되어 후보 하나가 탈락합니다. 그러나 후보는 끝없이 다시 생깁니다 — 사례가 규칙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실천이 결정합니다(§202).

크립케의 재구성 — 「크립켄슈타인」. 솔 크립키는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1982)에서 이 논변을 회의적 역설로 재구성했습니다. 「내가 지금까지 ‘+’로 덧셈을 의미해 왔다」는 사실을 성립시키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과거 사용은 유한하고, 그 유한한 사용은 quus(두 수가 57보다 작으면 더하고, 아니면 5를 내놓는 함수)와도 완벽히 일치합니다. 내 머릿속 어떤 것도, 내 성향도(성향은 유한하고 오류를 포함하므로) 이 사실을 성립시키지 못합니다. 크립키의 결론: 「의미한다」는 사실은 없고, 대신 공동체가 나를 정상적 사용자로 받아들이는 조건이 있을 뿐이다.
이것이 비트겐슈타인의 견해인가는 격렬한 논쟁거리입니다. 베이커·해커와 맥도웰은 크립키가 §201의 전반부(역설)만 읽고 후반부(해소)를 놓쳤다고 반박합니다. 「주요 논쟁」 참조. 해석 갈림

3.7§243–275 — 사적 언어 논변 The private language argumentPI §243–§275

Could there be a language whose words refer to what only the speaker can know — his immediate private sensations? §258 constructs one and shows that it collapses: with no criterion of correctness outside my memory, "correct" loses its grip. Whatever seems right to me is right — and that means we cannot talk about "right" here at all.

문제의 정확한 설정What is being denied

먼저 오해를 걷어내야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사람에게 사적 경험이 없다」거나 「감각은 실재하지 않는다」고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246이 명시합니다 — 「내가 아프다는 것을 내가 안다」는 말이 안 되고(의심할 여지가 없으므로), 그렇다고 남이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신음을 듣고 압니다). 부정되는 것은 아주 특정한 것 — 원리적으로 남이 이해할 수 없는 낱말들로 된 언어가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258 — S 일지The diary

사고 실험은 이렇습니다. 어떤 반복되는 감각에 이름을 붙이고 싶습니다. 그 감각에는 자연적 표현(신음, 몸짓)이 없다고 합시다. 그것이 나타날 때마다 일지에 「S」라고 적습니다. 이름은 어떻게 정의됩니까? 말로 설명할 수 없으니, 감각에 주의를 집중하면서 속으로 「이것이 S다」라고 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반론: 이 「정의」는 무엇을 해 냈습니까? 정의의 역할은 앞으로의 사용에 옳고 그름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일 어떤 감각이 왔을 때, 그것이 정말 S인지 판정할 수단은 「S였던 것에 대한 나의 기억」뿐입니다. 그리고 그 기억이 맞는지 확인할 방법은 없습니다.

§258의 결론 문장

여기서는 나에게 옳게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 옳다. 그리고 그것은 곧 여기서 우리가 「옳다」에 대해 말할 수 없다는 뜻이다.

따라 붙는 §265의 비유: 어떤 기억이 맞는지 확인하려고 그 기억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신문 기사가 사실인지 확인하려고 같은 신문을 한 부 더 사는 것과 같습니다.

§270이 결정적인 반전을 놓습니다. 이제 「S」에 바깥의 상관물을 붙여 봅시다 — 내가 일지에 S를 적을 때마다 혈압계가 상승을 가리킨다고 합시다. 그러면 「S」는 쓸모 있는 낱말이 됩니다. 내 기억이 틀릴 수도 있게 되고, 틀릴 수 있다는 바로 그 사실이 「맞다」에 내용을 줍니다. 주목할 점: 이때 「내적 대상이 정말 무엇인지」는 여전히 확인되지 않았지만, 그것은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시뮬레이션 6 · S 일지 — 기준 없는 정확성

매일 어떤 감각이 옵니다(당신에게는 세기만 흐릿하게 느껴집니다). 그것이 S라고 생각되면 「S다」를, 아니면 「S 아니다」를 누르십시오. 사적 모드에서는 아무리 오래 기록해도 정확도가 계산되지 않습니다 — 대조할 기준이 없기 때문입니다. §270 모드를 켜면 혈압계가 붙습니다. 그 순간 「틀렸다」가 의미를 갖기 시작하고, 비로소 「S」가 낱말이 됩니다. 바뀐 것은 당신의 내면이 아니라 공적 기준의 유무뿐입니다.

3.8§276–315 — 갑충 상자와 감각의 문법 The beetle in the boxPI §276–§315

Everyone has a box; everyone says there is a beetle in it; nobody can look into anyone else's box. §293 argues that the thing in the box, whatever it is, plays no part in the language-game — it "cancels out". This is either the deepest thing said about consciousness in the twentieth century or a piece of behaviourist sleight of hand, and the argument about which is still going.

§293의 사고 실험입니다. 모든 사람이 상자를 하나씩 가지고 있고, 안에 「갑충」이라 부르는 것이 들어 있습니다. 아무도 남의 상자를 들여다볼 수 없습니다. 각자는 자기 갑충만 보고 「갑충」이 무엇인지 안다고 말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지적: 상자마다 다른 것이 들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들어 있는 것이 계속 변할 수도 있습니다. 비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갑충」이라는 낱말로 완벽하게 소통합니다. 그러므로 상자 속의 그것은 이 언어게임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습니다. 「갑충」이 「감각의 이름」으로 쓰인다면, 그때 그 낱말의 사용은 상자의 내용과 무관합니다.

(비어 있음) A의 상자B의 상자 C의 상자D의 상자 서로의 상자는 볼 수 없다 "갑충""갑충" "갑충""갑충" 그런데도 소통에는 아무 문제가 없다. → 상자 속의 것은 언어게임에서 셈에 들어가지 않는다 (§293)
그림 10 — 갑충 상자. 이 논변은 「감각은 없다」가 아니라 「감각 낱말의 문법은 사적 대상을 가리키는 방식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를 주장합니다. 이 구별을 놓치면 전체가 행동주의로 오독됩니다.

§304가 예상되는 오해를 직접 막습니다 — 대화 상대가 「그러면 아픔은 아무것도 아니라는 겁니까?」라고 묻고, 비트겐슈타인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이 아니라,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어떤 것과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떤 것」과 「아무것도 아닌 것」의 이분법을 거부하는 중입니다. 거부되는 것은 대상이 아니라 문법입니다.

§309가 이 부의 유명한 마무리입니다 — 「철학에서 당신의 목표는 무엇인가? — 파리에게 파리통에서 나가는 길을 보여 주는 것.」 파리통(Fliegenglas)은 입구가 위로 열려 있는 유리병입니다. 파리는 빛을 향해 유리에 계속 부딪힙니다. 나가는 길은 들어온 길인데, 그것을 보지 못합니다.

3.9§316–693 — 사고, 의도, 의미함 Thinking, intending, meaningPI §316–§693

The last third applies the same treatment to a series of mental verbs. In each case the question "what is the inner process?" is replaced by "how is this word used, and what are its criteria?"

다루는 개념핵심 논지
§316–§362사고(Denken)「생각한다」는 말없이 하는 말하기가 아니다. 사고 없이 하는 말과 사고하며 하는 말의 차이는 맥락과 이어지는 행동에 있다.
§363–§397상상 · 심상심상은 그림이 아니다. 심상이 무엇의 상인지는 그 심상을 가진 사람이 무엇이라 하는가가 정한다.
§398–§427「나의」 시각적 방(visuelles Zimmer)「내가 보는 이 방은 나만의 것」이라는 말은 소유자가 없는 소유의 문법 — 유아론의 잔재를 해체한다.
§428–§465사고와 실재의 일치「사고가 사실에 닿는다」는 신비는 문법에서 나온다. 「p라고 생각한다」와 「p이다」의 같은 p가 그림 이론의 잔영이다.
§466–§490믿음의 근거귀납의 정당화는 다시 귀납일 수밖에 없다. 근거의 사슬은 어딘가에서 끝난다(§217과 연결).
§491–§570언어와 개념의 우연성§570: 개념은 우리를 탐구로 이끈다. 개념은 우리의 관심의 표현이며, 관심을 지휘한다.
§571–§610심리학의 문법§580: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 심리학의 혼란은 실험 방법과 개념 혼동의 병존에서 온다(PPF xiv도 같은 취지).
§611–§660의지 · 행위§621: 내가 팔을 든다는 사실에서 내 팔이 올라간다는 사실을 빼면 무엇이 남는가? — 「의지 작용」이라는 별도의 사건을 찾는 시도의 무의미함.
§661–§693의미함(meinen) · 의도「그 사람을 뜻했다」는 그 순간의 정신적 행위가 아니라 그 말이 놓인 상황 전체에 속한다. 의도는 제도와 관습에 박혀 있다(§337).

§570은 특히 중요합니다. 개념이 세계를 있는 그대로 반영한다는 생각을 뒤집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개념은 우리가 무엇에 관심을 갖는지의 표현이고, 동시에 우리의 관심을 어디로 향하게 할지 지휘합니다. 다른 삶의 형식은 다른 개념을 낳습니다 — 이것이 §142와 「자연의 매우 일반적인 사실들」(PPF xii)에 대한 논의로 이어집니다.

「자연사(自然史)적 사실」이라는 조건. PPF xii는 이렇게 말합니다 — 어떤 자연의 사실들이 지금과 달랐다면 사람들은 다른 개념을 형성했을 것이다. (예: 몸무게가 하루에도 크게 변한다면 「무게」 개념이 지금 같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상대주의가 아닙니다. 개념이 임의적이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 개념의 뿌리가 논리가 아니라 우리가 사는 세계의 우연적 사실에 있다는 뜻입니다. 5.9에서 LLM에게 어떤 자연사가 있는가를 물을 때 이 대목이 돌아옵니다.

3.102부(PPF) — 상 보기와 오리-토끼 Aspect-seeingPPF xi (구 2부 xi)

The second part's long eleventh section is about a phenomenon that fits nowhere: when a figure "changes" while you know nothing has changed. Seeing-as is neither pure perception nor pure interpretation, and Wittgenstein uses it to show that the perception/thought boundary we take for granted is a grammatical construction.

야스트로의 오리-토끼 그림이 여기 등장합니다. 같은 선들을 오리로도, 토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전환이 일어나는 순간 — 비트겐슈타인이 「상의 번쩍임(Aufleuchten eines Aspekts)」이라 부르는 — 나는 무엇을 보고했습니까?

이 절에서 나온 또 하나의 유명한 문장이 「사자가 말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입니다. 낱말을 다 번역해도 이해가 성립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해는 공유된 삶의 형식 위에서만 일어나기 때문입니다. 이 문장이 6부 전체의 축이 됩니다(5.9).

PPF xi은 또 「상맹(Aspektblindheit)」이라는 개념을 도입합니다. 어떤 사람이 오리-토끼를 볼 수는 있지만 전환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그는 무엇을 잃은 것입니까? 비트겐슈타인은 이것을 낱말의 의미를 「체험」하는 능력(예: 「밤(bank)」이라는 낱말을 두 뜻 중 하나로 「느끼며」 발음하기)과 연결합니다. 언어 능력에는 규칙을 따르는 능력 외에 이런 이차적 사용의 층이 있습니다.

시뮬레이션 7 · 상 보기 — 같은 선, 다른 그림

아래 도형의 선은 한 획도 바뀌지 않습니다. 바뀌는 것은 부제(副題)와 강조뿐입니다. 「오리」와 「토끼」를 번갈아 눌러 보고, 그다음 맥락 점화를 켜 보십시오 — 주변에 무엇이 놓이느냐에 따라 무엇이 먼저 보이는지가 달라집니다. LLM에서 같은 토큰열이 앞 문맥에 따라 다르게 이어지는 것과 구조적으로 같은 현상입니다.

2부의 지위. 지금의 PPF는 비트겐슈타인이 『탐구』의 2부로 삼으려 한 원고가 아닐 가능성이 높습니다. 편집자 앤스컴과 리스가 1946–49년의 심리철학 원고에서 골라 배치한 것입니다. 2009년 4판이 「2부」라는 명칭을 버리고 「심리철학 — 단편」으로 바꾼 이유가 이것입니다. 그러므로 「비트겐슈타인은 『탐구』 2부에서 …라고 말했다」는 표현은 조심해서 써야 합니다.
5부

마지막 저작들 — 경첩, 수학, 색, 그리고 자기 자신

On Certainty · Foundations of Mathematics · Remarks on Colour · Culture and Value

『탐구』가 유일한 후기 저작인 것은 아닙니다. 죽기 직전 열여덟 달 동안 쓴 『확실성에 관하여』는 인식론을 통째로 다시 짜는 문서이고, 1930–44년의 수학 원고는 그가 가장 오래 붙들었던 주제의 기록이며, 죽기 몇 주 전까지 쓴 『색채에 관한 소견』은 『논고』를 무너뜨린 바로 그 문제로 돌아갑니다.

4.1『확실성에 관하여』 — 경첩 명제 On Certainty · hinge propositionsOC §1–§676

Moore had tried to refute scepticism by holding up his hand and saying "I know this is a hand." Wittgenstein's last work argues that Moore was right to hold up the hand and wrong to say "I know". Some propositions are not things we know or doubt at all; they are the hinges on which knowing and doubting turn, and a hinge that moves is no longer a hinge.

무어의 손Moore's hand

G. E. 무어는 「외부 세계의 증명」에서 손을 들어 보이며 「여기 손이 하나 있다」를 안다고 선언함으로써 회의주의를 반박하려 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1949년 미국에서 맬컴과 이 논변을 두고 논쟁한 뒤 죽을 때까지 이 문제를 붙들었습니다.

그의 진단은 무어와 회의주의자가 같은 실수를 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 다 「여기 손이 하나 있다」를 인식론적 주장으로 취급합니다. 한쪽은 그것을 알 수 있다 하고 다른 쪽은 알 수 없다 합니다. 비트겐슈타인은 그것이 애초에 아는 종류의 것이 아니라고 답합니다.

핵심 문장의 취지
§94나는 내 세계상(世界像)을 그 옳음을 확인해서 얻은 것이 아니다. 그것은 참과 거짓을 가르는 물려받은 배경이다.
§95이 세계상을 기술하는 명제들은 일종의 신화에 속한다고 할 수 있다.
§96–§99강바닥 비유 — 굳어진 명제들이 흐르는 명제들의 물길이 된다. 강바닥은 옮겨 갈 수 있고, 단단한 암반과 씻겨 가는 모래로 되어 있다.
§115모든 것을 의심하려 한다면 아무것도 의심하지 못할 것이다. 의심이라는 게임 자체가 확실성을 전제한다.
§166어려운 것은 우리 믿음의 근거 없음을 깨닫는 일이다.
§204근거 대기는 끝난다. 그러나 그 끝은 명제가 자명하게 참으로 보이는 것이 아니라, 언어게임의 바닥에 놓인 우리의 행위다.
§248나는 내 확신의 암반에 이르렀다. 이 기초 벽들은 집 전체에 의해 떠받쳐진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341–§343우리가 던지는 물음과 의심은 어떤 명제들이 의심에서 면제되어 있다는 사실에 의존한다 — 그것들은 경첩과 같다. 문이 돌려면 경첩은 붙박여 있어야 한다.
§559언어게임은 근거 위에 서 있지 않다. 합리적이지도 비합리적이지도 않다. 그것은 거기 있다 — 우리 삶처럼.
§612근거의 끝에 오는 것은 설득이다.
§248의 놀라운 뒤집기

「기초 벽이 집을 떠받친다」가 아니라 「기초 벽이 집 전체에 의해 떠받쳐진다」입니다. 경첩 명제는 더 확실한 것에서 도출되어 확실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확실한 이유는 그것을 흔들면 나머지 전부가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토대주의도 정합주의도 아닌 제3의 구조이며, 오늘날 「경첩 인식론(hinge epistemology)」이라는 연구 분야를 낳았습니다.

시뮬레이션 8 · 경첩 — 의심의 대가

검증하려는 명제는 「여기 손이 하나 있다」입니다. 확인하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각 방법은 다른 명제들이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에 의존합니다. 아래 경첩을 하나씩 뽑아 보십시오. 경첩을 뽑을수록 확인 가능한 경로가 줄어들고, 전부 뽑으면 확인할 방법이 하나도 남지 않습니다 — 회의주의가 승리해서가 아니라 「확인한다」는 말 자체가 할 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115).

『확실성에 관하여』의 마지막 항목은 죽기 이틀 전인 1951년 4월 27일에 적혔습니다. 거기서도 그는 「내가 틀렸을 수도 있다」는 말이 어떤 경우에 뜻을 갖고 어떤 경우에 갖지 않는지를 따지고 있습니다.

4.2수학의 기초 — 발명인가 발견인가 Remarks on the Foundations of MathematicsRFM · LFM 1939

He spent more time on mathematics than on anything else, and the results are the least accepted part of his work. The central claim: the mathematician invents rather than discovers, a proof does not reveal a pre-existing truth but forges a new concept, and mathematical necessity is grammatical necessity. Also: Alan Turing sat in the 1939 lectures and argued back.

핵심 주장The core claims

1939년 강의 — 튜링이 앉아 있던 방Turing in the room

이 해설서에서 가장 기묘한 사실

1939년 케임브리지의 「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에 앨런 튜링이 참석했습니다. 같은 해 그는 자기 이름이 붙을 계산 모형에 관한 연구를 이미 발표한 상태였습니다. 학생 필기로 남은 이 강의록에는 두 사람의 직접 논쟁이 실려 있습니다.

쟁점: 형식 체계에 모순이 숨어 있으면 무슨 일이 생기는가. 튜링은 모순이 있으면 그 체계로 설계한 다리가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은 모순 자체가 해를 끼치는 것이 아니라 모순을 만났을 때 무엇을 하는가가 문제라고 답했습니다 — 실제 계산 실천에서 우리는 모순에 부딪히면 규칙을 고치지, 아무 결론이나 도출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 논쟁은 어느 쪽도 이기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두 입장은 그대로 「형식 체계로서의 계산」과 「실천으로서의 계산」이라는 두 갈래가 되어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6부의 유비를 예고하는 장면이 이보다 선명할 수 없습니다.

괴델에 관한 「악명 높은 문단」The notorious paragraph

RFM I 부록 III에서 비트겐슈타인은 괴델의 첫째 불완전성 정리에 대해 몇 문단을 씁니다. 요지는 「이 문장은 증명 불가능하다」를 참인 명제로 읽는 해석이 이미 특정 철학적 그림을 전제한다는 것입니다.

반응은 가혹했습니다. 크라이젤은 이 문단이 놀랄 만큼 하찮다고 평했고, 더밋도 비판적이었으며, 오랫동안 「비트겐슈타인은 괴델 정리를 이해하지 못했다」가 정설이었습니다. 2000년 플로이드와 퍼트넘이 이 문단을 훨씬 방어 가능한 형태로 재해석하는 논문을 내면서 논쟁이 재개되었습니다.

이 문서의 판단. 수학철학은 비트겐슈타인 저작 중 가장 널리 거부된 부분입니다. 그의 규약주의적 결론을 오늘날 그대로 받아들이는 수학철학자는 소수입니다. 다만 증명의 일목요연성, 규칙 따르기와 계산의 관계, 「기초」 개념 자체에 대한 회의는 지금도 살아 있는 논점입니다. 부분적으로만 수용됨

4.3색채와 심리철학의 단편들 Remarks on Colour, RPP, ZettelROC · RPP I–II · Z

In his last months he went back to the problem that had destroyed the Tractatus — colour — and treated it with the opposite method. Not "what must the logical structure of colour be?" but "what do we actually say about colours, and where does that leave us stuck?"

『색채에 관한 소견』(1950–51 집필, 1977 출간)은 괴테의 『색채론』을 실마리로 삼습니다. 던지는 물음들이 기묘합니다.

『논고』였다면 「색의 논리적 구조가 그것을 배제한다」고 답했을 것입니다(6.3751). 후기의 답은 다릅니다 — 이 「불가능성」들은 물리적 사실도 논리적 진리도 아니고, 우리 색채 개념들이 서로 맺고 있는 관계입니다. 그리고 그 관계는 우리가 실제로 색을 가지고 하는 일들 — 물감 섞기, 조명 이야기하기, 그림 그리기 — 에서 자랍니다. 같은 문제, 정반대의 방법. 이보다 두 철학의 차이를 잘 보여 주는 예는 없습니다.

같은 시기의 『심리철학적 소견』 I·II와 『쪽지』는 감각·기억·정서·의도 개념에 같은 방법을 적용한 방대한 초고들입니다. 『쪽지』 §608–§610의 유명한 대목 — 사고의 어떤 것도 뇌에 대응하는 것이 없을 가능성을 진지하게 상상해 보라는 — 은 오늘날 신경과학의 국소화 전제를 정면으로 건드립니다. (그가 신경 상관자를 부정한 것은 아니고, 그것을 필연으로 전제하는 것을 문제 삼습니다.)

4.4『문화와 가치』 — 철학 바깥의 비트겐슈타인 Culture and ValueCV

The remarks that were not about philosophy — on religion, music, Freud, Jewishness, and his own century — were collected separately. They are the clearest evidence that the two philosophies were written by someone who never regarded philosophy as an academic subject.

주제요지
종교자기는 종교적인 사람이 아니지만 모든 문제를 종교적 관점에서 보지 않을 수 없다고 적었다. 종교적 믿음은 가설이 아니라 삶 전체를 관통하는 준거틀이며, 증거로 뒷받침되지도 반박되지도 않는다(『종교적 믿음에 관한 강의』 1938).
프로이트스스로를 「프로이트의 제자」라 불렀으면서 동시에 정신분석이 강력한 신화를 과학으로 착각하고 있으며, 증거가 아니라 설득으로 작동한다고 비판했다. 그가 보기에 이것은 철학이 빠지는 함정과 같은 종류다.
진보와 문명1930년 서문 초안: 우리 문명은 「진보」라는 낱말로 특징지어지며 점점 더 복잡한 구조를 세우는 것을 활동으로 삼는다. 자기의 관심은 세우는 데 있지 않고 명료함(Klarheit)에 있다고 썼다.
철학의 문체철학은 사실 시(Dichtung)처럼 쓰여야 한다고 적었다. 『탐구』의 형식이 우연이 아님을 보여 준다.
유대성1930년대의 여러 항목에서 자기 사고의 성격을 「재생산적」이라 규정하며 유대적 사유에 대한 당대의 (문제적인) 통념을 자기 자신에게 적용한다. 이 항목들은 오늘날 그의 자기 이해와 시대의 편견이 뒤엉킨 대목으로 비판적으로 읽힌다.
고백「고백은 새로운 삶의 일부여야 한다」. 1931년 그는 친지들 앞에서 자기 삶의 몇 가지 거짓을 낱낱이 밝히는 「고백」을 감행했다. 철학의 정직성과 개인의 정직성을 같은 것으로 본 사람이다.
왜 이 절이 여기 있는가

6부에서 우리는 「LLM이 언어를 이해하는가」를 묻게 됩니다. 그때 비트겐슈타인의 답을 짐작하려면, 그에게 이해가 무엇이었는지를 알아야 합니다. 그는 음악의 주제를 이해하는 것, 사람의 얼굴을 알아보는 것, 어떤 삶의 방식을 알아듣는 것을 모두 「이해」의 중심 사례로 다뤘습니다. 명제의 진리조건을 계산하는 것은 그 중 하나일 뿐입니다. 이 배경이 없으면 6부는 오독됩니다.

6부

언어관과 LLM — 유사성 가설

The resemblance hypothesis · Wittgenstein and large language models

비트겐슈타인은 1951년에 죽었고 LLM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그가 평생을 걸어 도달한 결론 — 의미는 본질이 아니라 사용에 있다 — 위에 60년 뒤 실제로 작동하는 기계가 세워졌습니다. 이 부는 그 닮음을 끝까지 밀어붙이고, 어디까지가 진짜 닮음이고 어디부터가 착시인지를 항목별로 채점합니다.

5.0가설의 진술 Stating the hypothesis

Three claims, in decreasing order of confidence. The first is a historical parallel and is defensible. The second is a structural claim about how meaning is produced and is arguable. The third is a claim about understanding and is where the argument runs out.

H1

인공지능의 역사는 비트겐슈타인의 궤적을 되풀이했다

기호 · 논리 · 정의 · 명시적 규칙으로 언어를 다루려던 프로그램이 30년간 실패하고, 사용의 통계로 방향을 튼 뒤에야 작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은 『논고』에서 『탐구』로의 이동과 같은 구조의 실패와 같은 구조의 전향입니다. 인과 관계를 주장하는 것이 아닙니다 — 같은 벽에 부딪혔다는 것입니다.

H2

LLM은 「의미 = 사용」을 공학적으로 구현한 최초의 인공물이다

LLM에는 사전도, 온톨로지도, 지시체와의 연결도 없습니다. 오직 낱말이 다른 낱말들과 함께 나타나는 방식만으로 훈련됩니다. 그런데도 의미 비슷한 구조가 나옵니다. 이것은 「사용만으로 어디까지 가능한가」에 대한 사상 최대 규모의 경험적 실험입니다.

H3

따라서 LLM은 언어를 이해한다

이 결론은 따라 나오지 않습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사용」은 삶의 형식 안에서의 사용이고, 텍스트 코퍼스는 삶의 형식이 아니라 그 흔적입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본인은 사고와 감각의 귀속을 「살아 있는 인간, 그리고 인간과 닮은 것」에 한정했습니다(PI §281, §360). H3은 이 부에서 기각됩니다 — 다만 그 기각의 이유가 흔히 드는 이유와 다르다는 것이 요점입니다.

방법에 관한 예고. 비트겐슈타인 자신이라면 「LLM은 이해하는가?」라는 물음부터 의심했을 것입니다. 그는 이런 물음을 만나면 답을 찾는 대신 「우리는 ‘이해한다’를 언제 쓰는가, 그 기준은 무엇인가」를 물었습니다. 5.7–5.9는 그 방식으로 진행됩니다. 이것은 회피가 아니라 그의 방법 자체입니다.

5.1『논고』 = 기호주의 인공지능의 헌장 The Tractatus as the charter of symbolic AI

Nobody at Dartmouth in 1956 was reading the Tractatus. But if you had wanted a philosophical specification for symbolic AI, you could have written it out of the Tractatus line by line — and every assumption that program made, the book had already stated.

『논고』의 주장기호주의 AI의 대응 원리구현 사례
3.203이름은 대상을 의미한다심볼은 세계의 개체를 지시한다지식표현 온톨로지, 시맨틱 웹
4.024이해 = 참일 조건을 앎의미 = 형식적 진리조건몬터규 문법, 형식의미론
5명제는 요소명제의 진리함수복합 표현은 합성적으로 계산된다구문 주도 의미 계산, 파서
3.325논리적 구문론을 따르는 기호법이 필요형식 언어로 지식을 표상해야 한다Prolog, 술어논리, 프레임/스크립트
4.0031철학은 언어 비판애매성 제거가 곧 지능화규칙 기반 기계번역, 전문가 시스템
1.21 · 4.211요소명제들은 서로 독립적지식은 독립적 사실들의 집합사실 데이터베이스, CYC
4.5모든 명제를 담는 하나의 일반 형식범용 표상 언어가 존재한다「보편 지식표현 언어」의 꿈

이 프로그램은 1956년부터 1990년대까지 인공지능의 주류였고, 좋은 성과도 냈습니다 — 정리 증명, 체스, 제한된 영역의 전문가 시스템. 그러나 언어에서는 반복적으로 실패했습니다.

실패의 구조The shape of the failure

한 장면

테리 위노그라드의 SHRDLU(1968–70)는 기호주의 AI의 자랑이었습니다. 화면 속 블록 세계에서 「빨간 블록을 초록 블록 위에 놓아라」 같은 명령을 이해하고 실행했습니다.

그런데 이것은 정확히 『탐구』 §2의 건축가 언어게임입니다. 작은 세계, 몇 개의 낱말, 명령과 행동의 짝. 비트겐슈타인이 §2를 언어의 원시적 사례로 든 이유는 그것이 거기서 시작해 확장되지 않기 때문이었습니다. SHRDLU도 확장되지 않았습니다. 위노그라드 본인이 1980년대에 이 프로그램의 한계를 인정하고 방향을 바꾼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비트겐슈타인 19211929 1936–451953 『논고』논리적 형식 색채 배제 문제체계 붕괴 언어게임 · 가족유사성규칙 따르기 『탐구』의미 = 사용 같은 벽, 같은 순서 — 인과가 아니라 구조의 반복 19561970–80s 1990s2017– 다트머스 · 기호주의논리 · 정의 · 규칙 프레임 문제 · CYC정의가 끝나지 않음 통계적 전환코퍼스 · 분포 트랜스포머 · LLM사용만으로 훈련 주의 — 아래 연표의 어떤 연구자도 위 연표 때문에 방향을 바꾸지 않았습니다. 같은 문제에 부딪혀 같은 결론에 이르렀을 뿐입니다. 인공지능
그림 11 — 두 개의 평행 궤적. 붕괴 지점(1929 / 1970–80년대)과 전향 지점(1936 / 1990년대)이 나란히 놓입니다. 이것은 영향 관계의 주장이 아니라 구조의 관찰입니다.

5.2『탐구』 = 통계적 전환의 헌장 The Investigations as the charter of the statistical turn

The move that made language technology work was to stop asking what words mean and start counting how they are used. Every one of the assumptions this required is stated somewhere in the Investigations — and stated as a philosophical thesis, forty years earlier.

『탐구』의 주장통계적 언어처리의 대응 원리
§43의미는 언어에서의 쓰임분포 가설 — 의미는 문맥 분포로 근사된다
§66–§67공통 본질 없음 · 가족 유사성범주는 정의가 아니라 유사도 공간의 이웃 관계
§71흐릿한 개념도 쓸모 있다확률적 · 연속적 표상이 이산 범주보다 강건하다
§5–§6훈련(Abrichtung)이 이해에 앞선다대량 데이터에 대한 반복 학습이 곧 능력의 원천
§23언어게임은 무수히 많고 목록은 닫히지 않는다단일 과제가 아니라 다중 과제 · 지시 학습
§201–§202규칙은 사례가 아니라 실천이 정한다명시적 규칙 대신 학습된 정책
§109설명이 아니라 기술 · 배열이론 없는 예측 — 왜 되는지 몰라도 된다

마지막 행이 가장 아픕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설명하지 말고 기술하라」는 철학의 방법론이었지, 「모형이 왜 작동하는지 몰라도 된다」는 공학적 태도의 옹호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LLM은 정확히 그 상태에 있습니다 — 작동하는 것은 확실하고, 왜 작동하는지는 아무도 완전히 모릅니다. 이것을 비트겐슈타인적 승리로 읽을지 그의 방법에 대한 조롱으로 읽을지는 열려 있습니다.

유명한 문장 하나

1980년대 후반, 음성인식 연구를 이끌던 프레더릭 옐리네크가 남겼다고 전해지는 말 — 「언어학자를 한 명 해고할 때마다 인식률이 올라간다.」 (정확한 문구는 판본마다 다르고 본인도 뉘앙스를 여러 번 수정했습니다.) 이 농담이 요약하는 것은 규칙에서 통계로의 전향이고, 비트겐슈타인의 어휘로 옮기면 「본질을 찾지 말고 쓰임을 보라」입니다.

§23의 목록을 LLM에 대 보기Running §23 against a model

§23은 문장으로 사람이 하는 일들을 나열합니다. 그 목록을 LLM에 대 보면 흥미로운 분할이 나옵니다.

§23의 언어게임LLM
기술하기 · 보고하기 · 번역하기 · 이야기 짓기 · 수수께끼 · 농담수행 가능텍스트 안에서 완결되는 게임
가설 세우고 검증하기절반가설은 세우지만 검증은 바깥 세계를 요구한다 (도구 사용이 붙으면 달라짐)
명령하기 · 명령에 따르기절반명령문을 생산하지만 따름은 신체 · 행위자성을 요구한다
감사하기 · 인사하기 · 저주하기 · 기도하기수행 불가이 게임들은 화자의 처지를 필요로 한다 — 빚, 현전, 이해관계, 신앙
연극하기 · 돌림노래 부르기수행 불가공동의 시간과 몸을 요구한다

이 표가 6부 전체의 축소판입니다. 텍스트 안에서 완결되는 게임에서는 구별이 어렵고, 게임의 성립 조건이 텍스트 바깥에 있으면 구별이 즉시 드러납니다. 「고맙습니다」를 출력하는 것과 감사하는 것은 다릅니다. 차이는 문장에 있지 않고, 문장이 놓인 자리에 있습니다.

5.3의미 = 사용 ↔ 분포 가설 Meaning is use, and the distributional hypothesis

The technical formulation arrived in linguistics independently, in the 1950s, and became the engine of every language model since: a word's meaning can be approximated by the distribution of contexts it occurs in. The convergence with §43 is real. The gap between them is also real, and it is exactly one word wide.

계보The lineage

1953『철학적 탐구』 §43 —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의 그 쓰임이다 (「큰 부류에 대해서, 전부는 아니지만」)
1954젤리그 해리스, 「분포 구조」 — 언어 요소의 의미 차이는 분포 차이와 상관한다. 순수 형식적 · 수학적 정식화.
1957J. R. 퍼스 — 「낱말은 그것이 어울리는 무리로 알 수 있다.」 퍼스의 문맥 이론은 비트겐슈타인의 후기 언어관과 함께 논의된다.
1990년대잠재의미분석(LSA), 통계적 기계번역, n-그램 언어모형 — 코퍼스 규모가 성능을 결정하기 시작.
2013word2vec(미콜로프 외) — 문맥 예측만으로 얻은 벡터가 유추 관계까지 담는다는 것이 대중적으로 확인됨. 이어 GloVe(2014).
2017–2018트랜스포머(바스와니 외) · ELMo · BERT — 낱말 벡터가 고정값이 아니라 문맥마다 달라짐. 분포 가설이 문장 수준으로 올라감.
2020–대규모 사전학습 + 문맥 내 학습 — 다음 토큰 예측이라는 단일 목표만으로 수백 가지 과제가 따라 나옴.
한 낱말만큼의 간극

비트겐슈타인: 낱말의 의미는 언어에서의쓰임이다.
분포 가설: 낱말의 의미는 코퍼스에서의분포다.

쓰임(Gebrauch)은 누군가가 무언가를 하기 위해 낱말을 쓰는 것입니다. 분포는 낱말이 다른 낱말 옆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전자는 행위이고 후자는 통계입니다. 코퍼스는 언어게임이 아니라 언어게임이 남긴 자국입니다. LLM이 배우는 것은 사용이 아니라 사용의 흔적입니다.

이 간극은 측정됩니다. 7부의 시뮬레이션 9에서 한국어 조사 「을」과 「를」을 보십시오. 이 둘은 이 작은 언어에서 완전히 같은 일을 합니다 — 목적어를 표시하는 일. 쓰임이 같습니다. 그런데 분포 유사도는 0.4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상보 분포이기 때문입니다. 한쪽이 나타나는 자리에는 다른 쪽이 결코 나타나지 않습니다. 같은 일을 하는데 같은 자리에 서지 않으니, 분포는 그 동일성을 보지 못합니다. 이것이 「쓰임」과 「분포」가 갈라지는 지점을 숫자로 붙잡은 사례입니다.

그런데 이 지적을 곧바로 결정적 반박으로 읽으면 안 됩니다. 반론이 있습니다.

5.4가족 유사성 ↔ 임베딩 공간 Family resemblance and embedding space

This is the strongest single correspondence in the whole comparison. §66–§71 says concepts have no definitions, only overlapping similarities and blurred edges. An embedding space is exactly that structure, made computable — and the AI programs that assumed the opposite are the ones that failed.

§65–§71이 부정한 것

정의에 의한 범주

  • 필요충분조건의 목록
  • 날카로운 경계
  • 모든 성원이 공유하는 단일 특징
  • 상위/하위 개념의 엄격한 계층
  • 구현: 온톨로지 · 시소러스 · CYC · 사전 기반 NLP
§66–§67이 제시한 것

겹치는 유사성의 그물

  •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
  • 흐릿하고 확장 가능한 경계
  • 공통 본질 없이 유지되는 통일성
  • 가운데가 진하고 가장자리가 흐린 분포
  • 구현: 임베딩 · 유사도 · 연속 표상

임베딩 공간은 정의를 저장하지 않습니다. 저장하는 것은 거리입니다. 「게임」에 가까운 것들이 있고, 그것들끼리 서로 조금씩 다른 방향으로 가깝습니다. 체스는 바둑과 어떤 축에서 가깝고, 축구는 농구와 다른 축에서 가깝고, 솔리테어는 둘 다와 또 다른 축에서 가깝습니다. 모두를 관통하는 한 축은 없습니다. 이것이 §67의 실 비유를 좌표로 옮긴 것입니다.

중간 증인 — 인지심리학. 엘리너 로슈의 원형 이론(1970년대)은 비트겐슈타인의 가족 유사성을 명시적 출발점으로 삼아 실험을 설계했습니다. 사람들은 「새」의 정의를 갖고 있지 않으며, 참새를 펭귄보다 더 「새답다」고 일관되게 판정하고, 전형적 사례를 더 빨리 분류합니다. 즉 사람의 개념도 정의가 아니라 등급적 유사성으로 조직됩니다. 비트겐슈타인 → 로슈 → 분포 표상은 이 부에서 유일하게 실제 영향 관계가 문서화된 계보입니다. 검증됨

7부의 시뮬레이션 9에서 이 구조를 직접 만들어 봅니다 — 아무 정의도 주지 않고, 낱말이 어떤 낱말 옆에 나타나는지만 세어서 의미 비슷한 배치가 나오는지를 눈으로 확인합니다.

5.5훈련(Abrichtung) ↔ training Abrichtung and training

The German word Wittgenstein chose in §5 and §6 for how a child is brought into language is the word for drilling an animal. The English translation is "training". The coincidence with machine learning's term is a coincidence — but the concept underneath is not.

PI §5§6은 아이가 언어에 들어오는 방식을 Abrichtung이라 부릅니다. 이 낱말은 개나 말을 조련할 때 쓰는 단어입니다. 「가르치다(lehren)」도 「설명하다(erklären)」도 아닙니다. 비트겐슈타인이 이 단어를 고른 이유는 분명합니다 — 맨 처음에는 설명이 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설명을 알아들으려면 이미 언어를 알아야 하니까요.

단계비트겐슈타인의 아이 (§5–§9, §143–§145)언어모형평가
입력소리와 상황의 반복적 짝지음토큰열의 대량 반복 노출유사
초기 능력이해 없이 반응하기 — 앵무새처럼패턴 완성유사
교정어른이 「아니, 그건 판석이 아니야」손실 함수 · 인간 피드백(RLHF)유사
확장배운 적 없는 새 상황에 「같은 식으로」 나아감일반화부분
참여스스로 언어게임을 시작하고 이해관계를 갖는다없음 — 요청에만 응답불일치
환경공유된 물리 세계 · 몸 · 필요 · 위험텍스트만불일치

위 세 줄에서 유비는 놀랍도록 정확합니다. 아래 세 줄에서 무너집니다. 아이의 훈련은 세계 속에서 일어납니다. 어른이 「판석!」이라고 할 때 판석이 거기 있고, 아이가 잘못 가져오면 일이 진행되지 않습니다. 낱말과 세계의 연결은 정의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일이 되고 안 되고로 주어집니다. 텍스트 코퍼스에는 「일이 안 되는」 사건이 없습니다.

단, RLHF는 이 그림을 조금 바꿉니다. 인간 피드백 학습은 모형의 출력에 바깥의 판정을 붙입니다. 이것은 §202의 「사적으로는 규칙을 따를 수 없다」에 대한 공학적 응답처럼 보입니다 — 공동체가 교정을 공급하는 구조이니까요. 다만 그 공동체는 모형과 같은 세계에 살지 않고, 판정은 텍스트의 좋고 나쁨에 대한 것이지 일이 되고 안 되고에 대한 것이 아닙니다. 부분적 대응

5.6규칙 따르기 역설 ↔ 일반화와 과소결정 The paradox and underdetermination

§185 is the machine-learning generalisation problem, stated in 1945 without a single equation. A finite training set is compatible with infinitely many rules; the model settles on one; nothing in the data made it settle there. When the model's choice diverges from ours outside the training range, we call it a failure — the pupil in §185 calls it doing the same thing.

비트겐슈타인 / 크립키기계학습
유한한 사례는 규칙을 결정하지 못한다 (§185, §201)귀납의 과소결정 · 공짜 점심 없음 정리
학생은 1000 다음에 1004를 쓴다길이 · 범위 밖 일반화 실패
quus — 57 미만에서는 덧셈, 그 위에서는 5지름길 학습 · 허위 상관 · 데이터셋 편향
해석은 또 하나의 기호일 뿐 (§198)규칙을 명시해도 그 규칙의 적용은 다시 학습되어야 한다
「나는 그냥 이렇게 한다」 (§217)귀납 편향 — 왜 이 함수인지는 아키텍처와 최적화가 정한다
규칙 따르기는 실천이다 (§202)정렬은 명세가 아니라 계속되는 교정 과정이다
이 대응이 왜 중요한가

「모형이 무엇을 배웠는지」를 데이터만 보고 확정할 수 있다는 생각은 §185가 이미 반박한 생각입니다. 같은 훈련 데이터에 일치하는 함수는 무수히 많고, 모형이 그중 하나를 고른 이유는 데이터에 없습니다. 그래서 정렬(alignment)의 문제는 명세를 더 정교하게 쓰면 풀리는 문제가 아닙니다 — §198이 말하듯 명세도 해석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의 답(§202)은 「실천 속의 교정」이었고, 오늘의 답도 사실상 같습니다. 이것은 유비가 아니라 같은 논리적 구조입니다. 강하게 성립

다만 중요한 비대칭이 하나 있습니다. §185의 학생은 우리와 같은 삶의 형식 안에 있으면서도 갈라졌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이상하다고 느낍니다. 모형의 quus는 그와 다릅니다 — 모형은 애초에 우리와 같은 지점에서 자연스러움을 느끼도록 자란 존재가 아닙니다. §241–§242의 「판단의 일치」가 없는 곳에서는, 갈라짐이 예외가 아니라 기본값입니다.

5.7사적 언어 논변 ↔ 모델의 자기 보고와 해석가능성 Private language and model introspection

§258 says that where there is no criterion of correctness outside my memory, "correct" has no work to do. Applied to a model reporting on its own reasoning, this is not a metaphor: the report and the process it reports on are produced by the same system, with no independent check. Empirically, those reports are often wrong.

모형에게 「왜 그렇게 답했는지」를 물으면 그럴듯한 설명이 나옵니다. 그 설명이 실제로 답을 만들어 낸 과정과 일치하는지 확인할 방법은 무엇입니까?

사적 언어 논변의 구조가 그대로 적용됩니다. 보고보고되는 것이 같은 시스템의 산물이고, 바깥의 기준이 없습니다. 「모형에게 옳게 보이는 것이 무엇이든 옳다」 — 그리고 그것은 여기서 「옳다」를 말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사변이 아닙니다. 사고 사슬(chain-of-thought)의 불충실성(unfaithfulness)은 실험적으로 반복 확인되었습니다. 모형은 실제로는 프롬프트의 어떤 편향된 특징 때문에 답을 골라 놓고, 설명에서는 그 특징을 한 번도 언급하지 않는 그럴듯한 논증을 만들어 냅니다. 일지에 「S」를 적는 사람처럼, 모형은 자기 보고를 대조할 것이 없습니다.

§270이 알려 주는 해법

사적 언어 논변의 결론은 「내면에 대해 말할 수 없다」가 아닙니다. §270이 보여 준 대로, 바깥의 상관물을 붙이면 그 낱말은 즉시 쓸모를 얻습니다.

이것이 기계적 해석가능성(mechanistic interpretability) 연구가 하는 일입니다 — 모형의 자기 보고를 믿는 대신 내부 활성을 직접 측정하고, 개입(활성 조작)으로 인과적 검증을 겁니다. 비트겐슈타인의 어휘로 옮기면, 이 연구는 「S」에 혈압계를 붙이는 작업입니다. 그리고 이 구도에서 흥미로운 점은, 그렇게 찾아낸 내부 특징의 의미조차 그 특징이 나머지 회로에서 하는 일로 정의된다는 것입니다 — 다시 사용론입니다.

PPF xi의 한 문장. 「신이 우리 마음속을 들여다보았다 해도, 우리가 누구에 대해 말하고 있었는지는 거기서 볼 수 없었을 것이다.」 즉 의미는 내부 상태를 완전히 읽어도 거기서 읽히지 않습니다. 이 문장은 해석가능성 연구에 대한 가장 정확한 경고인 동시에, 그 연구의 목표를 다시 설정하게 합니다 — 찾아야 할 것은 「의미가 저장된 곳」이 아니라 모형의 행동을 설명하는 인과 구조입니다.

5.8갑충 상자 ↔ 기계 의식 논쟁 The beetle and the machine-consciousness debate

§293's argument, taken straight, says that whatever is in the box drops out of the language-game. Applied to "is there something it is like to be this model?", it suggests the question may be grammatically ill-formed rather than merely unanswerable. That is a substantive philosophical position, not a neutral observation — and Wittgenstein himself supplies the counterweight.

「LLM에 의식이 있는가」라는 물음은 갑충 상자와 정확히 같은 형태입니다. 우리는 상자를 열어 볼 수 없고,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방법이 없으며, 그러면서도 낱말(「느낀다」, 「원한다」, 「이해한다」)은 계속 쓰입니다.

§293의 논변을 그대로 적용하면 이렇게 됩니다 — 상자 속의 것이 무엇이든, 그것은 우리 언어게임에서 아무 역할도 하지 않으므로, 그것에 대한 물음은 답할 수 없는 물음이 아니라 물음이 아니다.

그러나 비트겐슈타인은 이 결론을 그대로 쓰지 않을 것입니다. PI §281: 「살아 있는 인간, 그리고 그와 닮은(그렇게 행동하는) 것에 대해서만 감각을 갖는다, 본다, 눈이 멀었다 …고 말할 수 있다.」
PI §283–§284: 돌을 보며 그것이 감각을 갖는다고 상상해 보라 — 아무 발판이 없다. 그런데 꿈틀거리는 파리를 보면 즉시 발판이 생긴다.
PI §359–§360: 「기계가 생각할 수 있는가? — 기계가 아플 수 있는가? … 우리는 인간과 인간을 닮은 것에 대해서만 그것이 생각한다고 말한다.」
즉 그는 귀속의 조건을 삶의 형식과의 닮음에 걸어 두었습니다. 갑충 상자는 「내면은 상관없다」가 아니라 「내면을 가리키는 방식으로 이 낱말들이 작동하지 않는다」는 논변이고, 이 낱말들이 어디에 적용되는지는 §281이 따로 정합니다.
유사성 가설 쪽

갑충 상자를 강하게 읽기

  • 행동과 사용이 다 맞아떨어지는데 「그래도 없다」고 할 근거가 무엇인가
  • 「내면」을 기준으로 삼는 것이야말로 비트겐슈타인이 부순 문법이다
  • 탄소 기반인지 규소 기반인지는 §293이 배제한 종류의 고려다
반대 쪽

§281을 강하게 읽기

  • §293은 「감각 낱말이 사적 대상을 가리키지 않는다」를 보일 뿐, 귀속 범위를 넓히지 않는다
  • 귀속의 발판은 삶의 형식과의 닮음이며 LLM에는 그것이 없다
  • 텍스트로 인간을 흉내 내는 것은 §281이 말한 「닮음」이 아니다 — 그 닮음은 행동의 전체를 뜻한다

이 문서의 판단: 두 번째가 비트겐슈타인 본인에게 더 충실합니다. 다만 첫 번째 입장이 지적하는 것도 진짜입니다 — 「닮음」의 기준을 탄소와 몸에 두는 순간, 그것은 §293이 배제한 종류의 형이상학적 기준으로 미끄러지기 쉽습니다. 이 긴장은 해소되지 않습니다. 미결

5.9사자와 LLM — 삶의 형식의 부재 The lion and the language model

The single most useful sentence Wittgenstein left for this problem is about a lion. If a lion could talk, we could not understand him — because understanding needs more than a shared vocabulary. The language model is the lion's exact inverse, and setting the two side by side is the clearest way to say what is missing.

PPF xi: 「사자가 말할 수 있다 해도 우리는 그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다.」

왜 그런가. 사자의 낱말을 전부 번역해 낸다고 해 봅시다. 그래도 이해는 오지 않습니다. 「배고프다」가 사자의 삶에서 무엇인지, 「영역」이 무엇인지, 무엇이 사자에게 중요한지 — 이것들은 낱말의 뜻이 아니라 삶의 형식이고, 그것을 공유하지 않으면 낱말은 겉돕니다.

여기서 결정적인 관찰이 나옵니다. LLM은 사자의 정반대입니다.

우리와 언어를 공유하는가 → 우리와 세계 를 공유 하는가 ↑ 사자 세계는 공유 · 언어는 없음 배고픔 · 위험 · 새끼를 안다 말해도 이해되지 않는다 사람 둘 다 공유 §241 — 판단에서 일치한다 이해가 성립하는 기본 사례 둘 다 없음 §284 — 상상할 발판조차 없다 LLM 언어는 공유 · 세계는 없음 모든 낱말을 쓰지만 겪은 것이 하나도 없다 정반대의 결여 사자는 세계를 공유하고 언어가 없다. LLM은 언어를 공유하고 세계가 없다.
그림 12 — 사자와 LLM. 두 결여는 대칭이지만 같지 않습니다. 사자의 결여는 우리가 채워 줄 수 없고, LLM의 결여는 원리적으로 채울 수 없는지 아직 결정되지 않았습니다 — 그것이 다중양식 · 체화 · 도구 사용 연구가 걸려 있는 물음입니다.

사자는 우리와 세계를 공유하지만 언어가 없습니다. LLM은 우리 언어를 완벽하게 다루지만 세계가 없습니다. 그런데 비트겐슈타인의 논변에서 이해를 성립시키는 것은 언어가 아니라 삶의 형식입니다. 그러므로 그의 틀 안에서는 LLM 쪽이 사자보다 나은 처지에 있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헷갈리는 처지에 있습니다 — 사자는 이해가 안 된다는 것이 즉시 드러나지만, LLM은 이해된 것처럼 보이기 때문입니다.

이 부의 가장 중요한 한 문장

「LLM은 언어게임의 모든 수(手)를 둘 수 있지만, 그 게임에 걸린 것이 없다.」
§23에서 언어게임이 게임인 이유는 규칙이 있어서가 아니라 사람들이 그것을 하고 살기 때문입니다. 「감사합니다」가 감사인 것은 문장 때문이 아니라 빚이 있었기 때문이고, 「아프다」가 아픔의 표현인 것은 아프기 때문이 아니라 그 외침이 우리 삶에서 신음의 자리를 물려받았기 때문입니다(§244). LLM에게는 그 자리가 없습니다.

5.10반론 — 벤더·콜러의 문어, 그리고 근거 짓기 문제 The octopus, and the grounding problem

The best-known argument against the resemblance hypothesis is a thought experiment about an octopus tapping a telegraph cable. It is a good argument. It is also, structurally, an argument from the Tractatus — and noticing that is the most useful thing this section can do.

문어 사고실험The octopus

벤더와 콜러(2020)의 설정입니다. 두 사람 A와 B가 무인도에 각각 떨어져 해저 전신선으로 대화합니다. 초지능 문어 O가 전선을 도청합니다. O는 영어를 모르고 세계도 모르지만 기호열의 통계는 완벽하게 학습합니다. 어느 날 O는 전선을 끊고 B인 척 대답하기 시작합니다. 한동안은 들키지 않습니다.

그러다 A가 곰의 습격을 받고 「나뭇가지와 끈으로 무기를 만들려는데 어떻게 해야 하나」고 묻습니다. O는 답할 수 없습니다. 「나뭇가지」가 무엇인지 겪은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결론: 형식(form)만으로는 의미(meaning)에 이르지 못한다. 의미는 형식과 의사소통 의도의 관계이며, 그 관계는 텍스트에 들어 있지 않습니다.

이 문서의 관찰

이것은 그림 이론의 논변입니다. 「의미는 언어 바깥의 것과의 관계에서 성립한다」 — 『논고』 2.1–2.223이 정확히 그렇게 말합니다. 즉 LLM 논쟁의 두 진영은 사실 비트겐슈타인의 전기와 후기입니다. 벤더·콜러 쪽은 전기 비트겐슈타인의 편에 서 있고, 「사용만으로 충분하다」는 쪽은 후기 비트겐슈타인의 편에 서 있습니다.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자신은 전자에서 후자로 갔습니다.

양쪽의 최선The best case on each side

반론재반론
형식만으로는 의미가 없다 (벤더·콜러 2020) 의미가 지시여야 한다는 전제가 이미 논쟁 대상이다. 개념역할 의미론에서는 표현의 의미가 다른 표현들과의 추론적 관계로 성립한다(피안타도시·힐 2022).
확률적 앵무새 — 형식의 재조합일 뿐 (벤더 외 2021) 「앵무새」도 하나의 그림(PI §115)이다. 이 그림이 예측을 내놓는가? 내놓는다면 검증해야 한다. 실제로 여러 예측(작문·추론·번역의 한계)이 어긋났다.
벡터 근거 짓기 문제 — 내부 표상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정하는 요인이 없다 (몰로·미예르 2023) 정확한 지적이다. 다만 같은 문제가 에도 제기되며, 사람의 경우 답은 「인과적·역사적 연결」이다. 도구 사용 · 다중양식 · 행위자적 학습은 그 연결을 부분적으로 공급한다.
삶의 형식이 없다 (5.9) 가장 강한 반론이며 이 문서도 여기에 선다. 다만 「삶의 형식」이 정도의 문제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그 개념 자체가 비트겐슈타인에게서 정의된 적이 없다는 점은 짚어 두어야 한다.
근거 짓기는 원리적으로 불가능하다 이것은 경험적 물음을 선험적으로 닫는 주장이다. 시각·행동·도구를 붙인 모형이 어디까지 가는지는 아직 진행 중이다. 이 문서는 이 주장을 채택하지 않는다.
공정을 위한 기록. 벤더·콜러의 논문은 2020년의 것이고, 그 뒤 모형의 능력은 그들이 예로 든 몇몇 실패 사례를 넘어섰습니다. 반대로 그들의 핵심 논점 — 형식과 의미의 구별, 그리고 벤치마크 성능이 이해의 증거가 아니라는 것 — 은 여전히 유효하며, 오히려 더 중요해졌습니다. 능력의 향상은 논점을 반박하지 않습니다. 문어가 더 오래 들키지 않게 되었을 뿐입니다.

5.11채점표 — 유사성 가설은 어디까지 버티는가 The scorecard

Item by item, with the verdict stated plainly. Two correspondences are as strong as anything in comparative philosophy. Three are partial. Three fail, and they fail for the same reason.

대응 항목비트겐슈타인LLM판정
가족 유사성 → 연속 표상§66–§71임베딩 공간강하게 성립
규칙의 과소결정§185–§201일반화 · quus형 실패강하게 성립
정의 프로그램의 실패§65–§69온톨로지 · CYC의 좌초역사적으로 확인
의미 = 사용§43분포 가설절반 — 「사용」이 「분포」로 축소됨
훈련 → training§5–§6사전학습 · RLHF절반 — 세계 속 교정이 없음
사적 언어 → 자기 보고§258–§270사고 사슬의 불충실성진단으로는 정확 · 처방은 다름
삶의 형식§19 · §241없음불성립
사고 · 감각의 귀속§281 · §360귀속 조건 미충족불성립
「이해한다」의 온전한 적용§146 · §580외적 기준은 통과 · 삶의 자리 없음불성립 — 다만 이유가 중요
결론

H1(역사의 평행)은 성립합니다. 두 궤적은 같은 벽에 부딪혀 같은 방향으로 꺾였습니다.

H2(사용의 공학적 구현)는 절반 성립합니다. LLM은 「사용만으로 얼마나 갈 수 있는가」에 대한 진짜 실험이고, 답은 「대단히 멀리」입니다. 다만 구현된 것은 사용이 아니라 사용의 흔적이며, 이 축소는 사소하지 않습니다.

H3(따라서 이해한다)은 기각됩니다. 그런데 기각의 이유가 흔히 드는 이유 — 「그건 그냥 통계니까」, 「의식이 없으니까」 — 와 다릅니다. 그 이유들은 비트겐슈타인이 부순 그림에 기대고 있습니다. 진짜 이유는 이해라는 낱말이 살고 있는 자리가 삶의 형식이고, 거기에 LLM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원리적 불가능」의 선언이 아니라 지금 상태에 대한 기술입니다.

비트겐슈타인이라면. 그는 아마 「LLM은 이해하는가?」에 답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대신 이렇게 물었을 겁니다 — 「당신은 무엇을 알고 싶어서 그것을 묻는가? 그 답이 예일 때와 아니오일 때, 당신은 무엇을 다르게 하겠는가?」 이 물음에 구체적으로 답할 수 있다면 그 답이 곧 기준이고, 답할 수 없다면 그 물음은 §123「나는 길을 모르겠다」입니다.
7부

시뮬레이션 실험실 — 사용만으로 어디까지

The laboratory · running the hypothesis

6부의 주장을 읽는 대신 돌려 봅니다. 아래 세 패널은 전부 이 페이지 안에서, 외부 통신 없이, 수십 줄의 자바스크립트로 돌아갑니다. 작은 것은 큰 것의 축소판이 아니지만 — 어떤 종류의 일이 일어나는지는 정확히 같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절에서 이 시뮬레이션들이 증명하지 못하는 것을 분명히 적어 둡니다.

6.1분포 의미론 실험 — 정의 없이 의미 만들기 Building meaning out of co-occurrence alone

No definitions are supplied to this panel. It is given only sentences, and it counts which words appear near which. From that count alone a structure emerges in which animals sit near animals, drinks near drinks, and tools near tools. This is §43 and Harris 1954 in about forty lines of code.

절차는 세 단계입니다.

단계하는 일대응하는 개념
① 공기(共起) 세기각 낱말 주변 ±윈도 안에 어떤 낱말이 몇 번 나왔는지 표를 만든다「어울리는 무리」 (퍼스 1957)
② PPMI 변환단순 빈도 대신 우연히 함께 나올 확률 대비 얼마나 더 자주 나왔는지로 바꾼다흔한 낱말의 영향 제거
③ 2차원 투영수십 차원 벡터를 주성분 두 개로 눌러 화면에 그린다임베딩 공간의 시각화
① 문장들 (사용의 흔적) 개 가 마당 에서 달린다 고양이 가 부엌 에서 잔다 아이 가 밥 을 먹는다 어른 이 물 을 마신다 말 이 들판 에서 달린다 아이 가 우유 를 마신다 ② 공기 행렬 → PPMI 낱말 × 낱말 ③ 2차원 투영 — 무리가 생긴다 동물 마실 것 장소 도구
그림 13 — 분포 의미론의 세 단계. 어느 단계에서도 낱말의 뜻을 적어 넣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오른쪽에 부류가 생깁니다.
시뮬레이션 9 · 분포 의미론 — 사용만으로 만들어지는 의미 공간

아래 코퍼스는 몇 개의 문장 틀에서 자동 생성된 것입니다. 어떤 낱말의 뜻도 입력되지 않았습니다. 세는 것은 공기 빈도뿐입니다. 낱말을 클릭하면 그 낱말과 가장 가까운 이웃이 표시됩니다. 문장 수를 늘리면 무리가 또렷해지고, 윈도를 넓히면 부류 구분이 흐려집니다 — 맥락을 너무 넓게 잡으면 「어울리는 무리」가 뭉개지기 때문입니다.

이 패널이 실제로 보여 주는 것

보여 주는 것 — 정의를 한 줄도 주지 않고 오직 공기 통계만으로 의미 부류에 해당하는 구조가 나온다는 것. 「밥」과 「빵」이 가까워지는 이유는 둘이 음식이어서가 아니라 같은 자리에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둘이 같은 자리에 나타나는 이유는, 사람들이 그 둘을 같은 방식으로 다루기 때문입니다.

보여 주지 못하는 것 ① — 「같은 일을 함」. 조사 「을」과 「를」을 클릭해 보십시오. 이 둘은 이 언어에서 완전히 같은 일을 합니다. 그런데 유사도가 낮게 나옵니다 — 상보 분포여서, 한쪽이 나타나는 자리에 다른 쪽은 결코 나타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분포는 「같은 자리에 나타남」을 재고, 쓰임은 「같은 일을 함」입니다. 5.3이 말한 「한 낱말만큼의 간극」이 여기서 숫자로 나타납니다.

보여 주지 못하는 것 ② — 이 점들이 무엇에 관한 것인지. 좌표계 전체를 뒤집거나 낱말 이름을 전부 바꿔도 구조는 그대로입니다. 구조는 있고 고정점이 없습니다. 이것이 5.10의 벡터 근거 짓기 문제입니다.

6.2다음 낱말 예측기 — 게임의 수(手)를 두는 기계 A next-word predictor

The same corpus, a different task: given what has come so far, what comes next? This is the entire training objective of a language model, reduced to counting. Watch the distribution sharpen as context accumulates — and watch what happens when you hand it a context it has never seen.

이 패널은 n-그램 세기만 합니다. 트랜스포머가 아닙니다. 그런데도 두 가지 중요한 현상이 그대로 나타납니다.

시뮬레이션 10 · 다음 낱말 예측 — 온도와 후퇴

낱말 단추를 눌러 앞맥락을 만드십시오. 오른쪽에 다음에 올 낱말의 확률이 막대로 나옵니다. 온도를 올리면 분포가 평평해지고(더 무작위), 내리면 뾰족해집니다(더 결정적). 「본 적 없는 문맥」을 누르면 훈련 코퍼스에 없는 조합이 주어집니다 — 모형이 어떻게 후퇴하는지, 그리고 그러면서도 확신에 찬 숫자를 내놓는지 보십시오.

6.3언어게임 훈련장 — Abrichtung에서 quus, 그리고 자기 보고까지 The training ground

The capstone. A learner is drilled on the builder's language-game, then probed three ways: on what it saw, on a combination it never saw, and with a word that does not exist. It also reports why it did what it did — and that report is generated the way models generate such reports, which is to say: not from the mechanism that produced the answer.

§2의 건축가 언어게임을 그대로 씁니다. 명령은 「낱말 + 수」 형태입니다 — 「판석 둘」, 「기둥 하나」. 학습자는 훈련 예시만 봅니다. 훈련에는 정해진 최대 수까지만 나옵니다. 그 위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가 §185입니다.

시뮬레이션 11 · 언어게임 훈련장 — 세 가지 검사

훈련 표본 수훈련에서 본 최대 수를 조절한 뒤 세 가지 검사를 눌러 보십시오. ① 본 적 있는 명령 — 잘합니다. ② 본 적 없는 수 — 두 가설(「수만큼」 / 「본 최대치까지만」)이 갈라지고, 훈련 데이터는 둘을 구별하지 못합니다. ③ 없는 낱말 — 그래도 무언가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매번 학습자의 자기 보고가 나옵니다. 그 아래 실제 내부 근거와 비교해 보십시오.

자기 보고에 관하여. 이 패널의 자기 보고는 실제 판단 과정과 무관하게 생성됩니다. 학습자는 「가장 많이 본 짝」으로 답을 고르고, 보고는 그럴듯한 문장 틀에서 뽑습니다. 이것은 트릭이 아니라 재현입니다 — 실제 모형의 사고 사슬도 종종 답을 만들어 낸 원인을 언급하지 않고, 그럴듯한 다른 이유를 댑니다(5.7). 그리고 이 패널에서만은 우리가 진짜 원인을 볼 수 있습니다 — 우리가 만들었으니까요. 실제 모형에서 그것을 보려는 시도가 해석가능성 연구입니다.

6.4이 시뮬레이션들이 증명하는 것과 못 하는 것 What this laboratory does and does not show

Small demonstrations are easy to over-read in both directions. Here is the honest accounting.

보여 준 것

성립하는 결론

  • 정의 없이도 의미 비슷한 구조가 나온다 — 6.1이 실제로 그것을 만든다.
  • 유한한 사례는 규칙을 결정하지 못한다 — 6.3의 두 가설이 훈련 데이터에서 구별되지 않는다.
  • 훈련이 이해에 앞선다 — 시뮬레이션 3의 조수는 이해 없이 옳게 반응한다.
  • 기준이 없으면 「옳다」가 작동하지 않는다 — 시뮬레이션 6에서 정확도가 계산되지 않는다.
  • 자기 보고는 원인의 증거가 아니다 — 6.3에서 두 줄이 어긋난다.
보여 주지 못한 것

넘어서면 안 되는 선

  • 규모가 질을 바꾸는지 — 이 패널들은 수백 문장이고 실제 모형은 수조 토큰이다. 창발 여부에 대해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 트랜스포머가 n-그램의 큰 판인지아니다. 주의 기제는 세는 것과 다른 일을 한다. 6.2는 목표의 형태만 같다.
  • LLM이 이해하는지 못 하는지 — 시뮬레이션은 개념을 보여 줄 뿐 판정하지 않는다.
  • 사람의 언어 습득이 이렇다는 것 — 아이는 코퍼스를 읽지 않는다. 6.1은 비유다.
  • 비트겐슈타인이 이것을 승인했으리라는 것 — 그는 모형을 만들지 말고 사례를 보라고 했을 것이다.
비트겐슈타인식 경고

PI §115하나의 그림이 우리를 사로잡고 있었다. 이 문서 전체가 하나의 그림입니다. 「인공지능의 역사는 비트겐슈타인의 궤적을 되풀이했다」는 그림. 그림은 보게 해 주는 만큼 가립니다. 이 그림이 가리는 것 — 인공지능 연구자들의 실제 동기, 통계적 방법이 성공한 공학적 이유, 그리고 비트겐슈타인 철학에서 이 유비와 아무 상관 없는 대부분의 내용. 이 해설서를 다 읽고 나면, 이 그림도 사다리처럼 다루십시오.

종합

논지 지도 · 검증 · 논쟁 · 유산

Synthesis · verification · disputes · legacy

앞의 일곱 부를 한 장으로 압축하고, 비트겐슈타인의 주장들이 오늘의 학문 앞에서 어떻게 서 있는지 항목별로 매기고, 그의 해석을 둘러싼 살아 있는 논쟁들을 정리합니다.

Σ전체 논지 지도 The whole argument on one page

Everything in this companion hangs from one chain: a theory of meaning as correspondence collapses on a technical problem, is replaced by a theory of meaning as use, and that second theory turns out to be the operating principle of a machine built sixty years later — which then fails a different test, for reasons the second theory itself supplies.

『논고』 — 의미는 세계와의 대응 그림 이론 · 논리적 원자 · 하나의 형식 붕괴 — 색채 배제 문제 (6.3751) 요소명제는 독립적이지 않다 『탐구』 — 의미는 언어에서의 쓰임 본질 없음 · 실천 · 삶의 형식 언어게임 §7·§23쓰임의 다수성 가족 유사성 §66본질 없는 통일 규칙 따르기 §185사례는 규칙을 못 정함 사적 언어 §258기준 없이 옳음 없음 6부 — LLM 유사성 가설 H1 역사의 평행 · H2 사용의 구현 · H3 따라서 이해한다 임베딩 · 훈련 · 과소결정 · 자기 보고 H1 성립 · H2 절반 성립 「사용」이 「분포」로 축소된 만큼만 H3 기각 — 삶의 형식 부재 §19 · §241 · §281 · PPF xi
그림 14 — 이 해설서 전체의 논증 사슬. 마지막 두 상자가 6부의 결론이며, 기각의 이유가 「통계라서」가 아니라 「삶의 형식이 없어서」라는 것이 이 문서의 요점입니다.
전기의 핵심
대응
명제가 사실을 그린다
후기의 핵심
사용
낱말이 활동 안에서 일한다
둘 다에서 살아남은 것
활동
철학은 이론이 아니라 활동 (4.112 · §109)
LLM이 가진 것
분포
사용의 흔적
LLM에 없는 것
자리
삶의 형식 · 걸린 것

현대 학문의 검증 How the claims have held up

Philosophy is not usually testable, but several of Wittgenstein's claims made contact with disciplines that later ran experiments. Here is the record, with the verdicts stated as plainly as the evidence allows.

주장출처이후의 학문판정
개념은 필요충분조건이 아니라 겹치는 유사성으로 조직된다 PI §66–§71 로슈의 원형 이론(1970년대), 등급적 범주 판단 실험, 분포 표상 확인됨
언어에는 단일한 본질이 없고 사용에 기반한 구성들의 집합이다 PI §23, §65 사용 기반 언어학 · 구문 문법(골드버그, 토마셀로) 주류 이론 중 하나
유한한 사례는 규칙을 결정하지 못한다 PI §185–§201 귀납의 과소결정, 통계학습이론, 공짜 점심 없음 정리 형식적으로 참
내적 과정은 외적 기준을 필요로 한다 PI §580 내성 보고의 신뢰성 연구, 작화(confabulation) 실험, 사고 사슬 불충실성 경험적 지지 다수
의미는 문맥에서의 사용으로 근사할 수 있다 PI §43 분포 의미론 · 언어모형의 실제 성능 공학적으로 성공 · 철학적으로 미결
언어 습득은 설명이 아니라 훈련으로 시작한다 PI §5–§6 사회적 학습 연구(토마셀로), 다만 촘스키 계열의 생득 논변과 충돌 논쟁 중
사적 언어는 불가능하다 PI §258 철학 내부에서 여전히 논쟁적; 감각 개념 습득 연구와는 정합 미결
확실성의 바닥에는 근거가 아니라 실천이 있다 OC §204, §248 경첩 인식론 · 인식적 기초에 관한 현대 논쟁 활발한 연구 영역
수학은 발견이 아니라 발명이다 RFM 수학철학 주류는 거부; 증명의 일목요연성 논점만 살아남음 대체로 거부됨
요소명제들은 서로 논리적으로 독립적이다 TLP 1.21 본인이 1929년에 반증 폐기
모든 명제는 하나의 일반 형식을 공유한다 TLP 6 화행론(오스틴 · 설), 양상 · 규범 언어의 처리 폐기
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 PI §124 규범적 주장 — 검증 대상이 아님 검증 불가 · 논쟁적

!주요 논쟁과 유산 Live disputes and influence

Five arguments in Wittgenstein scholarship that are not settled, and are unlikely to be. Where this companion has taken a side in the main text, it is marked here.

① 『논고』의 마지막 수 — 표준적 독법 대 단호한 독법Standard vs. resolute

6.54의 「사다리를 던져라」가 말할 수 없는 진리를 가리키는가(앤스컴·해커·기치), 아니면 그 생각까지 포함해 전부 버리라는 것인가(다이아몬드·코넌트). 이 문서의 서술: 표준적 독법에 가깝게 썼습니다 — 초심자에게 구조가 더 명료하기 때문이며, 옳다고 판단해서가 아닙니다. 1.10 참조.

② 규칙 따르기 — 크립키의 회의적 해석Kripkenstein

크립키(1982)는 §185–§202를 회의적 역설과 회의적 해결로 읽고, 「의미하다」에 대응하는 사실은 없으며 공동체의 수용 조건만 있다고 결론지었습니다. 베이커·해커는 이것이 §201 후반의 해소를 놓친 오독이라고, 맥도웰은 크립키가 해석과 실천 사이의 거짓 딜레마에 갇혔다고 반박합니다. 이 문서의 서술: 본문은 「해소」 쪽으로 썼고, 크립키는 별도로 소개했습니다. 3.6 참조.

③ 규칙 따르기는 공동체를 필요로 하는가Community vs. individualist

「사적으로 규칙을 따를 수 없다」(§202)가 원리적으로 고립된 개인은 규칙을 따를 수 없다는 뜻인지(공동체주의: 맬컴, 블루어), 아니면 실천과 규칙적 행동이 필요하다는 뜻일 뿐이며 로빈슨 크루소도 규칙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인지(개인주의: 베이커·해커). 텍스트만으로는 결정되지 않습니다. 미결

④ 사적 언어 논변은 무엇을 논박하는가What the PLA proves

가장 강한 독법은 감각 지시적 언어 일반의 불가능성을, 가장 약한 독법은 특정 데카르트적 그림의 불가능성만을 주장합니다. 또 이 논변이 행동주의로 미끄러지는지도 오래된 시비인데, §304와 §281이 그 방어선입니다.

⑤ 후기 철학은 보수적인가Is it politically quietist?

「철학은 모든 것을 있는 그대로 둔다」(§124)와 「삶의 형식은 주어진 것」(PPF xi)이 기존 관행에 대한 비판을 무력화한다는 비판(마르쿠제, 겔너 등)과, 반대로 개념의 우연성을 드러내는 것이야말로 비판의 조건이라는 옹호(윈치 이후의 사회이론, 그리고 최근의 페미니즘 비트겐슈타인 연구)가 맞섭니다.

유산 — 어디로 흘러갔는가Where it went

일상언어철학1940–60s
라일, 오스틴, 스트로슨. 오스틴의 화행 이론은 독립적으로 발전했지만 「말로 무엇을 하는가」라는 물음의 지형은 같다.
행위 철학1957–
앤스컴의 『의도』가 「이유로서의 설명」을 되살렸고, 이것이 현대 행위론과 실천 이성 논의의 출발점이 된다.
사회과학의 철학1958–
피터 윈치 『사회과학이라는 개념』이 「사회적 행위의 이해」를 언어게임 모델로 재구성. 이후 민속방법론(가핑클)에 직접 영향.
추론주의 의미론1990s–
셀라스를 거쳐 브랜덤으로. 의미를 지시가 아니라 추론적 역할로 보는 프로그램은 오늘 LLM 의미론 논쟁에서 다시 호출된다.
인지심리학1970s–
로슈의 원형 이론이 가족 유사성을 실험 프로그램으로 옮겼다. 이 문서에서 유일하게 직접 영향이 문서화된 경로.
인공지능 비판1972–
드레퓌스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이 기호주의의 한계를 하이데거·메를로퐁티·비트겐슈타인의 자원으로 진단. 30년 뒤 대체로 옳았던 것으로 평가된다.
인식론1990s–
『확실성에 관하여』에서 「경첩 인식론」이 자라났다. 회의주의 대응의 제3의 길로 활발히 연구된다.
치료적 철학1990s–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학파. 철학의 목표를 이론 구성이 아니라 혼란 해소로 보는 메타철학적 입장.
영향받지 않은 것도 기록해 둡니다. 촘스키 이후의 주류 생성언어학은 비트겐슈타인의 노선과 정면으로 갈립니다 — 언어에는 본질(보편문법)이 있고, 그것은 사용이 아니라 생득적 구조라는 것이니까요. LLM의 성공이 이 논쟁에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지금 진행 중인 물음이며, 양쪽 모두 자기 편의 증거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G용어집 Glossary

The German term first, since the English translations diverge and several long-running disputes are really disputes about a translation choice.

Sachverhalt사태
대상들이 결합해 이룰 수 있는 가능한 상태. 오그던은 atomic fact, 피어스·맥기니스는 state of affairs로 옮겼다. 성립할 수도 성립하지 않을 수도 있다. TLP 2.01
Tatsache사실
실제로 성립한 사태. 세계는 사실들의 총체이지 사물의 총체가 아니다. TLP 1.1, 2
Gegenstand대상
단순하고 더 분석되지 않는 것, 세계의 실체. 『논고』는 단 하나의 예도 제시하지 않는다. TLP 2.02
logische Form논리적 형식
그림과 그려진 것이 공유해야 하는 배열의 형식. 공유하기 때문에 그릴 수 있고, 공유하는 것이기에 그려질 수는 없다. TLP 2.18, 4.12
sagen / zeigen말함 / 보임
『논고』의 중심 구별. 명제는 사태를 말하고 논리적 형식을 보인다. 보일 수 있는 것은 말해질 수 없다. TLP 4.1212
Sinn
명제가 그리는 사태. 참이든 거짓이든 뜻은 있다. 프레게의 Sinn(뜻)/Bedeutung(지시체) 구별에서 온 어휘.
sinnlos뜻이 없음
항진명제와 모순명제의 지위.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 정보가 없는 것 — 기호 체계의 정당한 일부다. TLP 4.461
unsinnig무의미
기호에 아무 의미도 부여되지 않은 상태. 형이상학의 문장들, 그리고 『논고』 자신의 명제들이 여기 속한다. TLP 4.003, 6.54
Elementarsatz요소명제
더 분석되지 않는 명제. 서로 논리적으로 독립적이어야 한다는 요구가 색채 배제 문제로 무너진다. TLP 4.21, 6.3751
Wahrheitsfunktion진리함수
요소명제들의 진리값만으로 값이 정해지는 함수. 모든 명제가 이것이라는 주장이 명제 5다.
N-OperatorN 연산자
주어진 명제들을 동시에 부정하는 연산(공동 부정). 이것 하나의 반복으로 모든 진리함수를 얻는다는 것이 명제 6. 오늘날의 NOR. TLP 5.502
Sprachspiel언어게임
언어와 그 언어가 엮여 있는 활동의 전체. 원시적 사례를 뜻하기도 하고, 실제 언어 실천의 단위를 뜻하기도 한다. PI §7, §23
Lebensform삶의 형식
언어게임이 뿌리내린 활동·제도·자연사의 총체. 비트겐슈타인 본인이 정의하지 않아 해석이 갈리는 핵심어. PI §19, §23, §241
Familienähnlichkeit가족 유사성
공통 본질 없이 겹치고 교차하는 유사성들로 묶이는 개념 구조. 「게임」이 표준 사례. PI §66–§67
Gebrauch쓰임 · 사용
낱말이 언어 안에서 하는 일. 「의미 = 사용」의 그 사용이며, 통계적 「분포」와 같지 않다. PI §43
Abrichtung훈련
동물 조련에 쓰는 낱말. 아이가 언어에 들어오는 최초의 방식이 설명이 아니라 이것이라는 주장. PI §5, §6, §86
übersichtliche Darstellung일목요연한 조망
사실들을 연결이 한눈에 보이도록 배열하는 것. 설명을 대신하는 후기 철학의 방법. 프레이저 비판에서 처음 정식화. PI §122
Kriterium / Symptom기준 / 징후
기준은 개념 적용을 문법적으로 정하는 것, 징후는 경험적으로 상관된 것. 『청색책』에서 도입되어 심리 개념 분석의 도구가 된다.
Regelfolgen규칙 따르기
규칙에 맞게 행위함. 유한한 사례가 규칙을 결정하지 못하므로, 규칙을 고정하는 것은 해석이 아니라 실천이다. PI §185–§202
quus쿠스
크립키가 만든 함수. 두 수가 작으면 덧셈과 같고 크면 상수를 내놓는다. 과거의 유한한 사용이 「덧셈」을 확정하지 못함을 보이는 장치.
Privatsprache사적 언어
원리적으로 화자 본인만 이해할 수 있는 언어. §258의 논변은 이런 언어에서 「옳다」가 작동하지 않음을 보인다.
Käfer in der Schachtel갑충 상자
각자 상자 속의 것만 보면서 같은 낱말을 쓰는 사고 실험. 상자 속의 것은 언어게임에서 셈에 들어가지 않는다. PI §293
Sehen als / Aspekt…으로 보기 · 상(相)
같은 도형이 오리로도 토끼로도 보이는 현상. 지각과 해석 어느 쪽으로도 분류되지 않아 그 구별 자체를 문제 삼게 한다. PPF xi
Angelsatz / hinge경첩 명제
의심에서 면제되어 있어서 다른 의심들이 그 위에서 돌 수 있게 하는 명제. 알려지는 것도 의심되는 것도 아니다. OC §341–§343
Weltbild세계상
참·거짓을 가르는 데 쓰이는 물려받은 배경. 검증해서 얻은 것이 아니며 신화에 비유된다. OC §94–§95
Fliegenglas파리통
철학의 목표에 대한 비유. 나가는 길은 들어온 길인데 파리는 그것을 보지 못한다. PI §309
craving for generality일반성에 대한 갈망
모든 사례에 공통된 것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는 충동. 과학의 방법을 철학에 잘못 들여온 결과라는 진단. BB
Zwischenglieder중간 고리
서로 멀어 보이는 사례들을 잇기 위해 배치하는 매개 사례. 일목요연한 조망을 만드는 수단.
distributional hypothesis분포 가설
낱말의 의미 차이는 그 낱말이 나타나는 문맥의 분포 차이와 상관한다는 가설. 해리스(1954) · 퍼스(1957). 오늘날 모든 언어모형의 전제.
embedding임베딩
낱말·문장을 고차원 벡터로 나타낸 것. 정의를 저장하지 않고 거리를 저장한다는 점에서 가족 유사성의 계산적 구현.
PPMI양의 점별 상호정보량
두 낱말이 우연히 함께 나올 확률 대비 실제로 얼마나 더 자주 함께 나오는지의 척도. 음수는 0으로 자른다. 7부 시뮬레이션 9에서 사용.
next-token prediction다음 토큰 예측
LLM의 사전학습 목표. 「여기서 사람들은 무엇이라 말하는가」를 형식화한 것이며, 지시나 진리조건은 관여하지 않는다.
grounding근거 짓기
기호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를 정하는 문제. 텍스트만으로 훈련된 표상에 대해 이 문제가 성립하는가가 5.10의 쟁점.
stochastic parrot확률적 앵무새
언어모형이 의미 없이 형식을 재조합할 뿐이라는 비판적 비유(벤더 외 2021). 이 문서는 이것 역시 하나의 그림으로 취급한다.
CoT unfaithfulness사고 사슬 불충실성
모형이 설명한 추론 과정이 실제로 답을 만들어 낸 과정과 다른 현상. 사적 언어 논변의 구조가 그대로 적용된다(5.7).
mechanistic interpretability기계적 해석가능성
모형의 자기 보고 대신 내부 구조를 직접 측정·개입해 인과를 확인하는 연구. §270의 「혈압계 붙이기」에 해당.
prototype theory원형 이론
범주가 정의가 아니라 전형 사례와의 유사도로 조직된다는 심리학 이론(로슈). 가족 유사성에서 직접 출발했다.
resolute reading단호한 독법
『논고』의 무의미를 「깊은 무의미」가 아니라 그냥 무의미로 읽고, 「말할 수 없는 진리가 있다」는 생각까지 버리는 해석(다이아몬드·코넌트).
Nachlass유고
약 2만 쪽의 수고와 타자본. 후기 저작 대부분이 이 더미에서 편집된 것이므로, 해석 논쟁이 종종 편집 논쟁이 된다.
Vienna Circle빈학단
슐리크·카르납·바이스만 등. 『논고』를 논리실증주의의 창립 문서로 읽었으나, 검증원리도 6.4 이후의 윤리도 그 책의 것이 아니다.

T연표 · 더 읽을거리 Chronology and further reading

18894월 26일 빈 출생. 8남매의 막내.
1902 · 1904형 한스와 루돌프의 죽음.
1903–06린츠 실업학교. 이전까지는 가정교육.
1906–08베를린 샤를로텐부르크 공대, 기계공학.
1908–11맨체스터 대학 항공공학. 연 실험, 이어 제트 반동 프로펠러 설계.
1911프로펠러 영국 특허. 예나에서 프레게를 만나고, 그의 권유로 케임브리지의 러셀에게 감.
1912–13트리니티 칼리지. 핀센트와의 우정. 「논리에 관한 노트」.
1913–14노르웨이 스콜덴에 오두막. 「무어에게 구술한 노트」. 아버지 사망(1913), 막대한 유산 상속.
1914–18오스트리아-헝가리 군 자원입대. 동부·이탈리아 전선. 무공 훈장. 전쟁 일기(→『노트북 1914–1916』).
1918여름 휴가 중 『논고』 완성. 형 쿠르트 자살. 핀센트 사망.
1918–19이탈리아 전선에서 포로. 몬테카시노 수용소. 원고를 러셀·프레게에게 보냄.
1919상속 재산 전액을 형제들에게 양도.
1921 · 1922『논고』 독어판 · 영역본(오그던 역, 러셀 서문) 출간.
1920–26오스트리아 시골 초등학교 교사 — 트라텐바흐 · 푸흐베르크 · 오터탈.
1923 · 1924램지가 푸흐베르크로 찾아와 『논고』를 함께 읽음.
1926하이트바우어 사건, 사직. 『국민학교용 사전』 출간. 어머니 사망. 수도원 정원사.
1926–28누이 그레틀을 위해 쿤트만가세 저택 설계(엥겔만과).
1927–32빈학단(슐리크·바이스만)과의 대화. 회원이 된 적은 없음.
1929케임브리지 귀환. 『논고』로 박사학위(심사: 러셀·무어). 「논리적 형식에 관한 몇 가지 소견」 — 발표 전 철회. 「윤리에 관한 강연」.
1929–31색채 배제 문제의 여파. 검증주의를 잠시 거쳤다가 버림. 『철학적 소견』.
1930램지 사망(26세). 스라파와의 대화 시작.
1931프레이저 『황금가지』에 대한 소견 — 「일목요연한 조망」 개념의 출발.
1933–35『청색책』 · 『갈색책』 구술. 「언어게임」 · 「가족 유사성」 · 「기준과 징후」 등장.
1935소련 방문. 육체노동자로 정착하려 했으나 무산.
1936–37노르웨이 오두막. 『갈색책』 독어 개작을 포기하고 『탐구』를 처음부터 새로 씀. 「고백」.
1938–39오스트리아 병합. 가족의 신분 협상. 1939년 영국 시민권 취득, 무어의 뒤를 이어 케임브리지 철학 교수.
1939「수학의 기초에 관한 강의」 — 튜링이 참석해 논쟁.
1941–44가이 병원 인부, 뉴캐슬 부상 쇼크 연구팀 조수. 스키너 사망(1941).
1945『탐구』 서문 작성. 1부는 사실상 완성 상태.
1946–49심리철학 원고 대량 집필(→ PPF · RPP). 1946년 포퍼와의 「부지깽이 사건」.
1947교수직 사임. 이후 아일랜드에서 은거.
1949미국 이타카에서 맬컴 방문 — 무어의 「나는 손이 있음을 안다」를 다시 붙듦. 전립선암 진단.
1950–51『확실성에 관하여』 · 『색채에 관한 소견』 집필. 마지막 항목은 죽기 이틀 전.
19514월 29일 케임브리지에서 사망. 「내가 멋진 삶을 살았다고 전해 주세요.」
1953『철학적 탐구』 출간(앤스컴·리스 편, 앤스컴 역).
1956 · 1958 · 1961『수학의 기초에 관한 소견』 · 『청색책과 갈색책』 · 『노트북 1914–1916』.
1967 · 1969 · 1977『쪽지』 · 『확실성에 관하여』 · 『색채에 관한 소견』 · 『문화와 가치』.
1982크립키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 「크립켄슈타인」 논쟁의 시작.
2000크레리·리드 편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 단호한 독법의 결집.
2000년대베르겐 전자판으로 유고 전체가 공개되어 편집 문제를 직접 확인할 수 있게 됨.
2009『탐구』 4판(해커·슐테 개정) — 2부를 「심리철학 — 단편(PPF)」으로 재편.

더 읽을거리Further reading

목적비고
원전 · 전기『논리철학논고』 (오그던 역 1922 · 피어스–맥기니스 역 1961)오그던 역은 저작권 소멸, 온라인에서 전문 열람 가능
원전 · 후기『철학적 탐구』 4판 (해커·슐테 개정, 2009)독영 대역. PPF 재편과 개정 번역어를 반영한 표준판
전기레이 몽크, 『비트겐슈타인 평전 — 천재의 의무』 (1990)표준 전기. 철학과 생애를 함께 서술한다
가족사알렉산더 워, 『비트겐슈타인가』 (2008)가문의 부와 파국, 1938–39년 협상에 대한 상세한 기록
『논고』 입문앤스컴, 『비트겐슈타인의 논고 입문』 (1959)표준적 독법의 고전. 프레게·러셀 배경을 짚어 준다
『탐구』 주석베이커·해커 외, 『철학적 탐구 분석적 주석』 (전 4권)절 단위 주석의 결정판. 크립키에 대한 강한 반론을 포함
규칙 따르기크립키, 『비트겐슈타인 규칙과 사적 언어』 (1982)영향력이 가장 큰 재구성. 논쟁의 출발점으로 읽을 것
단호한 독법크레리·리드 편, 『새로운 비트겐슈타인』 (2000)다이아몬드·코넌트를 포함한 논문 모음
회고맬컴, 『비트겐슈타인 회상록』 / 리스 편, 『회상』마지막 말, 강의 풍경, 인간적 면모의 1차 자료
AI 비판의 계보드레퓌스, 『컴퓨터가 할 수 없는 것』 (1972 · 개정 1992)기호주의 AI의 한계를 현상학·비트겐슈타인의 자원으로 진단
LLM 논쟁 (반대편)벤더 · 콜러, 「데이터 시대의 의미·형식·이해」 (ACL 2020)문어 사고실험의 출처. 5.10의 핵심 텍스트
LLM 논쟁 (옹호편)피안타도시 · 힐, 「지시 없는 의미」 (2022) / 파블릭, 「LLM에서의 기호와 근거 짓기」 (2023)개념역할 의미론에 기댄 응답과, 논쟁 지형의 정리
근거 짓기 문제몰로 · 미예르, 「벡터 근거 짓기 문제」 (2023)내부 표상의 지향성 문제를 정면으로 다룬다
유고 원본베르겐 전자판 (Wittgenstein Nachlass)수고 이미지와 전사본. 편집 이전의 텍스트를 직접 확인할 수 있다
한국어 번역에 관하여. 『논고』와 『탐구』 모두 복수의 한국어 번역이 있으며 용어 선택이 서로 다릅니다 (특히 Sachverhalt를 「사태」로 옮길지 「사실」로 옮길지, Satz를 「명제」로 옮길지 「문장」으로 옮길지). 이 해설서의 용어는 용어집에 밝힌 대로 통일했으므로, 번역본과 대조해 읽을 때는 독일어 원어를 기준으로 삼는 편이 안전합니다.